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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전망대]신연수/조폭영화 같은 한국의 노사문화

입력 | 2003-09-07 17:40:00


주한 외국 기업에서 노조 파업과 직장 폐쇄가 늘고 있다. 일부 다국적 기업들은 아예 한국의 생산기지를 없앨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상품은 팔되 한국에서는 생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국내 기업이건 다국적 기업이건 근로조건이나 임금인상을 둘러싼 노사갈등이나 파업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외국기업들이 생산공장까지 철수하겠다면서 넌더리를 내는 이유는 다른 데 있는 듯하다.

언론에 상세히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파업이 진행되는 사업장들에는 섬뜩한 장면들이 많다. 노조원들이 사장을 감금, 폭행하는가 하면 ‘배신자의 목숨은 내가 끊는다’ ‘사장의 X를 갈아 OO하자’ 등 살벌한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들이 난무하고 있다.

어느 주한 외국 기업 경영자는 본사에서 노조의 구호들을 보고하라고 했으나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들이 많아 차마 보고하지 못했다고 한다. 최근 공장 철수를 검토한 한 외국 기업의 경영자는 신변에 위협을 느껴 사업장에 내려가지도 못한다고 호소한다.

선진국의 노사관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다. 이런 사실들이 해외에 알려지면 한국은 언제라도 사업장 내 폭동이 일어날 수 있는 무법천지로 비칠지 모른다. ‘조폭 영화’를 연상시키는 이런 파업장들을 보면 정말 이들이 몇 년 동안 한 회사에서 일한 사람들인지 의아할 정도다.

한국 기업의 경영자들도 노사협상을 하러 가면 ‘투쟁’이란 빨간 띠를 두른 노조 대표들을 보고 일단 질린다고 한다. 협상장에 들어와 ‘여기서 죽겠다’는 말을 서슴지 않는 노조 대표들도 있다. 한국인들도 무서운데 하물며 다른 문화에서 자라거나 기업활동을 해온 외국기업 경영자들이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노조도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외국 기업 노조들은 경영진이 성의 있는 협상을 하지 않는 데다 단체협상으로 약속한 사항마저 번번이 지키지 않는다고 한다. 구조조정으로 인한 조합원들의 생계 위협, 계속되는 좌절과 배신감 등이 이들을 극단적인 행동으로 몰아갔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유야 어찌됐든 이런 폭력적인 태도로는 노사간 대화나 협상은 꿈도 꿀 수 없다. 단절과 대립은 경영자뿐 아니라 근로자들에게도 파국을 가져올 뿐이다.

흔히 심리학에서 갈등은 눈덩이에 비유된다. 작은 것에서 불신이 싹트면서 감정이 쌓여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것이다. 개인은 물론이고 집단간의 갈등도 마찬가지다.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는 외국기업의 노사관계도 작은 데서부터 불신이 누적됐을 가능성이 크다.

사회과학에서는 또 사회적 갈등을 두 가지로 나눈다. 한쪽이 이익을 보면 다른 쪽은 손해 보는 ‘제로섬 갈등’과 양쪽 모두가 이익이 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는 ‘비(非)제로섬 갈등’이다. 노사협상은 얼핏 보면 제로섬 게임 같지만 양측이 서로 사는 방법을 찾을 수 있고, 찾아야만 하는 관계다. 결국 노든 사든 서로 상대방을 파트너로 인정하고 협상하는 데서 해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중국의 부상으로 인해 한국은 더 이상 동북아에서 매력적인 투자처가 아니다. 외국 기업 경영자들에게 인내하면서 풀라고 하기에는 한국의 노사문화는 너무 파괴적으로 치닫고 있다.

신연수기자 ys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