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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 만나는 시]김광규 '오뉴월'

입력 | 2003-06-13 17:18:00


우리가 만들어낸 게임보다

아름답지 않습니까

장끼 우짖는 소리

꾀꼬리의 사랑 노래

뭉게구름 몇 군데를

연녹색으로 물들입니다

승부와 관계없이

산개구리 울어대는 뒷산으로

암내 난 고양이 밤새껏 쏘다니고

밤나무꽃 짙은 향내가

동정의 열기를 뿜어냅니다

환호와 야유와 한숨이 지나간 자리로

남지나해의 물먹은 회오리바람

북회귀선을 넘어 다가오는 소리

곳곳에서 탐스럽게 버섯으로 돋아나고

돼지우리 근처 미나리꽝에서 맹꽁이들

짝 찾기에 소란스럽습니다

월드컵 축구 중계도 아랑곳없이

들판에서 온종일 땀 흘리는 보람으로

짙푸르게 우리의 여름이 익어갑니다

승리는 이렇게 조용히 옵니다

■ ‘처음 만나던 때’(문학과 지성사) 중에서

풍경 하나, 못난 까투리 하나 두고 장끼 둘이 다툰다. 저놈들은 하나가 죽어야 싸움이 끝난다고 하지만 믿을 수 없다. 잘 하면 두 마리 다 잡을 것 같다. 냅다 지겟작대기로 맨땅만 치고 허탈해 웃는 떠꺼머리 총각, 그래도 어여쁜 꿩깃 하나 귀밑머리에 꽂고 내려온다.

풍경 둘, 첫 몽정한 샅을 움켜쥔 소년 하나 밤나무 밑으로 달아난다. 달아나도 달아나도 축축한 내음 온 동네 소문난 듯 골마다 허옇다. 저만치 나물 캐러 나온 점순이한테 들킨 게 틀림없어 다시는 나물 바구니 들어줄 자신 없다.

풍경 셋, 둥근 달이 떴다. 우물가에 개구리 한 마리 오버헤드 킥으로 저 달을 차 기어이 우물 속에 처넣는다. 하, 우물마다 달이 뜬다.

세상에 저런 심심한 시가 있나? 장끼, 꾀꼬리, 개구리, 밤꽃, 뭉게구름… 저 흔한 것들을 일일이 호명해 놓고 턱하니 ‘오뉴월’이라 이름 붙였다. 헌데 저 당연한 호명이 왜 이리도 낯설고 절절한 걸까. 아니 저 흔한 것들조차 우리는 지금 가까이에서 볼 수 없다. 진정한 승리는 인간만이 아우성치며 벌이는 게임이 아니라 제자리에 있어야 할 온생명들이 함께 있는 것. 저 낯익은 것들이 안타까워 오랜만에 나도 내 고향의 풍경을 호명해 보았다.

반칠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