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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리뷰]'튜브'…“폭탄鐵을 세워라”

입력 | 2003-05-29 17:41:00


지하철 테러를 소재로 한 대형 액션영화 ‘튜브’가 다음달 5일 개봉을 맞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2001년 12월 촬영이 시작될 때 할리우드식 액션 영화를 만든다는 기대를 받았지만 이듬해 8월 촬영을 마쳤을 때에는 ‘아 유 레디’ ‘예스터데이’ 등이 잇따라 흥행에 실패해 ‘한국형 블록버스터’에 대한 싸늘한 시선과 마주쳐야 했다. 3월로 예정됐던 개봉일은 2월 대구 지하철 참사 때문에 넉 달이나 미뤄졌다.

순제작비 (마케팅비 제외) 56억원을 들인 ‘튜브’는 할리우드를 모델로 삼는 일부 한국영화의 성과와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액션의 시각적 효과는 일정 수준에 도달했지만 이야기의 흐름이 허술하고 캐릭터들이 평면적이다.

테러범 강기택(박상민)을 뒤쫓는 장도준 형사(김석훈)에게는 강기택의 테러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목격해야 했던 아픔이 있다. 전직 국가정보부의 비밀요원인 강기택은 국가로부터 버림받자 복수를 하기 위해 지하철을 탈취한다. 그의 지하철 테러 시도를 눈치 챈 소매치기 인경 (배두나)의 다급한 연락으로 장형사는 지하철에 올라타 사투를 벌인다.

김석훈

‘할리우드식 액션’을 표방한 영화답게 ‘튜브’의 시각적 특수 효과는 세련됐고 액션에는 박진감이 살아 있다. 지하철 객차 세트의 창밖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고 지나가는 빛을 스크린 뒤쪽에서 비춰 맞은 편 지하철이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듯한 느낌을 주는 등의 특수 효과는 영화를 실감나게 난다. 지하철의 충돌을 막기 위해 객차를 분리하고 중앙 통제실에서 초를 다투며 선로를 바꾸는 장면 등 기술적 표현에도 스릴이 살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드라마를 희생해가며 ‘할리우드 액션’을 피상적으로 뒤쫓았을 때 얼마나 많은 것을 잃는지를 보여준다.

영화 초반부, 공항 총격전에 뛰어든 장형사에게 다른 경찰들이 “뭐하는 사람이냐”고 묻자 그는 “나도 그게 궁금해. 도대체 내가 뭐하는 놈인지”라고 대답한다. 영화를 보는 이들도 그게 궁금하다. 저 등장인물들은 뭐하는 이들이기에 저런 행동을 하는 걸까. 인경은 목숨걸고 장형사를 사랑하지만 그 감정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오리무중이다.

악역인 박상민의 카리스마는 뻣뻣하고 주연인 김석훈은 온 몸을 던져 연기했지만 ‘바쁘겠다’는 것 이상으로 느껴지는 감정의 결이 없다. 조연들도 중앙 통제실의 권실장 (손병호)을 제외하고는 영화에 녹아들어가지 못했다.

등장인물들의 감정에 공감이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새신랑인 중앙 통제실의 직원(정준)은 아내가 탄 전동차를 사지에 몰아넣는 선로 교체를 자기 손으로 해야 했으면서도 왜 저렇게 담담한가, 영화 마지막에 위기를 조성하는 폭탄은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왔나 등 풀리지 않는 의문이 꼬리를 문다.

시종 흘러나오는 음악도 후반부에 이르면 영화 관람을 방해할 지경이다. 결국 ‘튜브’는 영화의 시청각적 쾌감도 개연성있는 사건의 전개, 입체적인 캐릭터의 구축이 뒷받침되었을 때에만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쉬리’ 조감독 출신인 백운학 감독의 데뷔작. 15세이상 관람가.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