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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슬픈 흰 곰의 노래'…인간에 의해 오염된 북극

입력 | 2003-05-02 17:14:00


◇슬픈 흰 곰의 노래/장-루이 에티엔 지음 이재룡 옮김/208쪽 8000원 동아일보사

‘연약한 세계에 대한 보고서’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는 여러 해 겨울을 북극에서 보낸 저자의 경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북극에서 겪은 일화들을 펼쳐 놓은 15편의 글은 지우(知友)의 여행담을 대하는 것 같다. 준엄한 자연과 생태학적 주제를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과 함께 전달하는 저자의 목소리가 부드럽고 생생하다.

오래전 노르웨이 스피츠버그대에서 열린 북극학회 회의에 모인 사람들은 느닷없이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곰 한 마리를 보게 됐다. 그 곰은 목에 아르고스 연구소의 발신장치를 걸고 있었다. 알고 보니 노르웨이 극지 연구소에서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는 곰.

발신장치를 통해 이동경로를 살펴보니 ‘해외여행’을 마다하지 않는 다양한 곰의 궤적을 볼 수 있었다. 인간들이 자신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아는 듯이 1년 만에 나타난 곰 이야기와 곰의 생존 방식이 재미있게 어우러진다.

저자는 곰 덕분에 북극이라는 세계에 눈을 뜨게 됐다고 말한다. 거대한 ‘얼음방패’ 이면에 숨겨진, 무사안일로 인해 상처 입은 세계를 보게 된 것이다. 그가 만난 북극곰들은 한결같이 인간에게 ‘조심하라. 당신들은 길을 잃었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빙하의 왕자’ 북극곰은 높다란 왕좌에 앉아 인간들이 영역을 넓히고 번식하고, 또 아무런 죄의식 없이 쓰레기를 바다에 버리는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 쓰레기를 몸 안에 축적하고 있는 북극곰은 곧 극지 생태계의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너무도 교묘하게 꾸며지고 조직되고 제도화된 나머지 누구나 굴복하게 되고 마는, 가짜 이익과 두려움과 제약으로 이뤄진 미로 속에서 삶이 실종되고 마는 매일의 일상’으로 인해 북극으로 떠난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극지 환경이 우리와 상관없지 않다는 것을, 세계의 균형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인간의 문명으로부터 동떨어진 양 극지는 오늘날 역사교과서의 역할을 한다. 남극과 그린란드의 빙하는 과거의 기후에 대한 기억창고이며, 케르겔렌(남인도양 남부에 있는 프랑스령 제도)의 대기는 맑은 공기의 척도이며, 펭귄은 과다한 수산 포획의 생물학적 눈금이고, 북극곰의 혈액은 해양 오염 확장의 지표가 된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