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전 강원 속초시의 한 약사가 전재산을 털어 성적은 우수하나 돈이 없어 공부를 중단할 처지에 놓인 학생들을 돕기 위한 장학회를 설립했다.
이 장학회는 그 자신에게 공부를 할 수 있게 지원해준 양아버지에 대한 보은의 성격을 가진 것이기도 했다. 그 장학회 발족식장에서 양아버지는 약사인 양아들을 격려하며 말했다.
“빈자(貧者)가 켜는 한 등(燈)은 장자(長者)가 켜는 만 등과 같다.”
21년 전 동아일보가 보도한(1982년 10월30일자 사회면 톱) 속초 동제약국 약사 김충호(金忠鎬·66·속초시 금호동)씨와 그의 양아버지 박태송(朴泰松·96년 작고)씨의 사연, 그리고 김씨가 만든 충정장학회에 관한 이야기다.
22일 오후 2시. 속초문화회관 대강당에서는 충정장학회 설립 20주년 기념식이 열린다. 그동안 이 장학회가 길러내 이제 각계각층에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수혜자 40명이 모두 한 곳에 모인다.
충정장학회는 그동안 매년 이 지역 양양고와 속초고를 졸업하는 학생 중 대학에 합격하고도 돈이 없어 등록금을 낼 수 없는 2명을 선발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전액 장학금을 지급해왔다. 일반대학의 경우는 8학기이지만 의대의 경우 12학기 동안 장학금이 지급됐다.
이 장학회 수혜자 중 현재 나이가 가장 많은 사람은 40세이고 막내는 대학 1학년 학생. 출신 대학별로는 서울대가 10명이고 나머지 30명이 고려대 성균관대 한양대 강원대 등 각 대학에 분포되어 있다. 교사 의사 회계사 회사원 방송기자 등 직업도 다양하다.
김 이사장이 자랑하는 것은 이들의 직업이나 출세 여부가 아니다. 이들 모두가 자신의 위치에서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직장인과 생활인이 되어 있다는 점이다. 선량하고 성실한 시민들이 많을 때 우리 사회는 더 건강해진다는 것이 김 이사장의 지론이기도 하다.
김 이사장은 “그동안 이들이 학업을 마치고 직장을 구한 뒤 결혼 주례를 부탁해올 때와 첫아이를 낳아 안고 올 때가 가장 반가웠다”고 회상했다.
장학회 설립의 계기가 된 김씨와 양아버지 박씨의 관계는 4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5년 3월 강원 양양 양양중학교 졸업식에 관내 유지로 참석한 양조장 주인 박씨는 3년 개근과 함께 우등상장을 받는 김충호군을 주목했다. 당시 김군은 집안이 어려워 고교 진학을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박씨는 이 학생을 자기 집으로 데려와 고등학교를 졸업시킨 뒤 서울 소재 동양의대(경희대 약대 전신)에 진학시켜 약사로 키워냈다. 그 후 27년이 지난 82년 말 김씨는 양아버지 박씨의 은혜에 보답하는 의미로 5000만원을 출연해 충정장학회를 설립했다.
당시 김씨는 장학회를 설립하기 전 양아버지 박씨에게 편지를 썼다.
“저는 아버님의 은혜로 오늘날의 충호가 됐습니다. 양복이나 보약을 해드리는 소박한 보은도 생각해 보았지만 아버님의 뜻을 영원히 이어나가기 위해 장학재단을 세우기로 뜻을 굳혔습니다.”
비록 수백명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대규모 장학재단은 아니지만 한두 사람에게라도 진정한 도움을 주어 그 능력에 맞게 인생의 진로를 선택하게 해주자는 취지였다.
김씨의 장학기금은 현재 1억5000만원. 이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그는 85년 서울에 있는 노른자위 땅을 팔았고 늘 내핍 생활을 해야 했다.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은 김씨를 아버님이라고 부른다. 5년 전부터는 ‘충정가족 하계수련회’를 만들어 매년 가족과 함께 김씨를 찾아온다.
그는 충정장학회 20주년 기념사에서 자식 같은 수혜자들에게 말할 생각이다.
“절대 신용을 잃지 말고 살아라. 그리고 가장 부유해지는 방법은 바로 남을 돕는 일이다.”
바로 양아버지가 자신에게 남겨준 인생의 교훈이기도 하다.
속초=경인수기자 sunghy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