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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하철 방화/문제점]‘먹구름 매연’ 돌진 1080호 미스터리

입력 | 2003-02-19 18:56:00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 사건의 최대 미스터리는 ‘1080호 전동차의 어이없는 돌진’이다. 중앙로역은 이미 화염에 싸여 있는 상황. 먼저 이 역에 도착한 1079호에서 불길이 번지면서 역 일대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먹구름 매연’으로 가득찼지만 1080호는 역 진입을 강행했다. 더구나 1080호는 화염을 발견한 뒤에도 후진이나, 돌파를 하지 않은 채 1079호 옆에 나란히 멈춰 서 수많은 죽음을 자초했다. 공교롭게도 1080호 전동차 기관사 최상열씨(39)는 큰 외상없이 대피했다. 객차 안에서는 70여명의 승객이 질식사했다. 1080호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①사령실 “정지”대신에 “주의 운전”▼

▽사태 심각성 알았나=경찰 조사결과 대구지하철공사 종합사령실과 1080호간에는 긴박한 ‘위험 상황’에 대한 교감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비상대처 요령에 있어서도 양측은 서로 책임 떠넘기기식 공방을 벌이고 있다.

기관사 최씨가 중앙로역 화재사고 소식을 최초로 접한 시간은 인접 대구역을 출발한 18일 오전 9시55분30초경. 최씨는 대구역을 출발한 직후이며 중앙로역에 도착하기 1분여 전에 종합사령실로부터 ‘주의 운전하라’는 무선지시를 받았다.

그러나 사령실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주의 운전’할지를 명시하지 않았다. 최씨 역시 평소대로 이를 ‘형식적인 주의’로 받아들였다.

종합사령실측은 “불이 역 구내에서 났는지 전동차 안에서 났는지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따라서 다소 막연하게 주의 운전을 지시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 경우 어떤 절차에 따라 주의할지는 해당 기관사에게 달려 있다”는 주장이었다. 결국 기관사 최씨는 대구역을 출발한 55분30초부터 단전으로 전동차가 멈춘 57분까지 1분30초 동안 ‘독자적 판단’에 의존해 수백명의 생명을 끌고 가는 상황에 놓였다.

▼②기관사 불길 보고도 10분간 정차▼

▽왜 화재 속에 정차했나=최씨는 중앙로역으로 다가서면서 시커먼 매연을 발견했다. 화재의 심각성을 직감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1080호는 역내로 들어섰다. 대구지하철공사의 기관사 ‘운전교범’ 195조(기관사는 사고발생 우려시 즉시 정차하고 사령실에 보고하는 등 안전조치를 취해야 한다)를 지키지 않은 것. 1080호가 1079호와 나란히 정차한 지 15초 뒤 전력공급이 중단돼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최씨와 사령실의 통화기록에 따르면 잠시 뒤 급전(急電)이 이뤄졌다. 급전은 전력공급이 자동 중단되는 비상상황에 대비한 ‘비상탈출’ 동력. 사령실은 “빨리 발차하세요. 조심하세요”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최씨는 “다시 단전됐다. 운행할 수가 없다”고 회신했다. 이후 교신은 중단됐다. 기관사 최씨는 사령실과 ‘대처’ 문제를 이처럼 논의하느라 10분여를 허비했다. 이 사이 그는 “출발할 테니 내리지 말라”는 안내방송을 했다고 생존자들은 전했다. 결정적 탈출 타이밍을 놓친 셈이다.

▼③사고정황 파악 못한채 우왕좌왕▼

▽그때 종합사령실은 무엇했나=종합사령실도 역시 우왕좌왕했다. 사령실은 모든 전동차와 연결된 무선 핫라인을 통해 ‘주의 운전’을 지시한 것 외에 보다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사령실 관계자는 “중앙로역이 단전되면서 CCTV도 꺼져 진행상황을 알 수 없었다”며 “1080호 전동차 기관사에게도 수차례 무선교신을 시도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구지하철공사 종합사령실 곽정환(郭正煥·52) 실장은 “단전 후 곧 전력이 공급되면서 운행을 시도했으나 다시 전력이 끊기는 과정에서 시간이 낭비된 것 같다”며 “중앙로역 사고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진입하는 1080호 전동차에 명확한 지령을 내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④비상배터리 있는데도 門 안열려▼

▽문은 왜 닫혔나=전동차는 비상용 배터리로 전력공급이 중단돼도 자체적으로 문을 3, 4차례는 열 수 있도록 제작되어 있다. 그러나 생존자 상당수는 “문이 열리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지하철공사 관계자는 “전동차내 비상배터리 연결전선이 훼손될 경우 문이 자동으로 닫힐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기관사 최씨도 “정차한 직후 문을 한차례 열었다가 일부 승객이 항의해 다시 닫았다”며 “최종 대피할 때도 문을 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은 상당수 승객이 문 닫힌 객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는 점에서 최씨 주장의 진위를 조사중이다.

대구〓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