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라는 초강수를 둠으로써 한미 정부가 곤혹스러운 상황에 빠졌다.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재개 의사를 발표한 직후에 이 같은 사태가 발생해 북한 핵문제는 북-미대화 재개 조짐이라는 긍정적 기류와 NPT 탈퇴에 따른 핵 위기가 공존하는 급박한 상황이 됐다.》
▼한국 "예정된 수순…차분히 대응"▼
10일 북한의 전격적인 NPT 탈퇴 선언에 우리 정부는 “예정된 수순이었다”고 평가하면서도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는 모습이다.
정부는 북한의 NPT 탈퇴 선언이 그들의 주장과 달리 전력생산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북-미간 제네바 합의가 사실상 무효화한 상황에서 북한이 유일하게 국제사회의 법적 구속을 받아온 NPT에서 벗어나 최대한 행동 반경을 넓혀가면서 미국과의 협상력을 키워보겠다는 전략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단 북한의 다음 수순은 5MW 원자로의 핵연료봉을 장전, 재가동하게 될 것이라는 게 정부의 관측이다.
하지만 정부는 ‘북한의 NPT 탈퇴’라는 악재와 ‘미국의 대북 대화의지’라는 호재가 병행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차분히 대응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외교통상부의 고위당국자는 이날 “남북간 대화 채널이 열려 있고 고위급 접촉이 예정돼 있는 데다 북-미간에도 실질적 대화로 나가는 방향이다. 북한의 NPT 탈퇴 선언이 또 다른 모험이긴 하지만 북한이 지금 무엇을 당장 하겠다는 뜻은 아닌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또 “북한이 핵무기 개발 의사가 없음을 밝힌 것은 미국과의 대화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라며 “이번 탈퇴선언이 북한과 대화를 하겠다는 미국의 의지에도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정부는 특히 북한이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적대정책을 그만둔다면 북-미간에 별도의 검증을 통해 핵무기를 만들지 않겠다는 뜻을 증명해 보일 수 있다”고 언급한 것에 주목하고 있다. 이는 한미일 3국과 국제사회가 북한에 요구한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의 폐기’를 받아들일 수도 있음을 시사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미국 "北에 끌려다닐수 없다"▼
미국은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묵과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최근 북한을 공격할 의도가 없음을 거듭 천명했고, 콜린 파월 국무장관도 북한이 요구하는 안전보장 문제를 고려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 북한을 안심시킴으로써 국면을 대화와 협상 쪽으로 바꾸겠다는 의도를 내비친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NPT 탈퇴라는 초강수를 들고 나왔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대응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북한이 노리는 것이 장차 있을 미국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다분히 전술적인 것이라면 미국으로서는 더더욱 북한에 끌려갈 수는 없는 상황이다.
미국은 우선 북한에 대한 강력한 비판과 함께 한국 일본 등 동맹국들과 공동대응책 마련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갈 경우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최근 북핵 문제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부를 연기하고, 북한에 핵 동결 해제조치의 원상 회복을 위해 한달여의 시간을 준 결정을 재고해 주도록 요청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미국은 그러나 북한의 이번 조치가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수순인 만큼 즉각적인 강경책을 구사하기보다는 국제공조를 통해 압박을 가하면서 대화의 문은 계속 열어놓는 양면전략을 구사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미국은 특히 북한이 NPT 탈퇴를 선언하면서 “우리가 핵무기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북-미 사이에 별도의 검증을 통해 증명해 보일 수도 있다”고 한 대목에 주목하고 있다고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전했다.
북한의 이 같은 언급은 93년의 핵 위기 때처럼 대화의 여지를 남겨 놓은 것이기 때문에 미국이 먼저 대화의 문을 닫아버릴 필요는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 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