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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시욱칼럼]´反美기류´ 편승할 일인가

입력 | 2002-12-11 18:14:00


제16대 대통령선거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연이은 대규모 반미시위로 미묘한 기류가 감돌고 있다. 반미기류 확산이 선거의 새로운 변수로 등장하자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이에 편승하더니 금주부터는 시위사태 자체가 선거 쟁점이 되었다.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요구서에 서명한 데 대해 민주당이 ‘쇼’라고 비난하자, 한나라당은 노무현 후보측이 반미감정을 이용하고 있다고 맞선 것이다. 한나라당은 나아가 이번 반미시위를 확산하는 세력이 있으며 정부가 반미 분위기를 방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어정쩡한 정부태도 사태악화▼

확실히 정부는 여중생 치사사건의 초기단계에서 미온적 태도를 취해 상황을 악화시킨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여중생 사건은 희생자 본인들이나 유족들에게는 너무도 비통한 일이지만 사안 자체는 단순한 교통사고였다. 사태를 악화시킨 것은 재판관할권을 미국이 갖도록 한 SOFA 규정과 우리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 관련 미군 병사들에 대한 무죄평결이다. 무죄평결은 국가적 자존심을 짓밟는 미국의 ‘오만’으로 비쳐 국민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SOFA에 대한 국내 일부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현행 협정을 개정할 생각이 없는 정부는 이달 초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례안보협의회의에서 이 문제를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현행 협정이 재작년에 개정된 것인 데다 미국측이 재개정에 응할 가능성이 안 보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랬으면 정부는 마땅히 그 대책을 세웠어야 했다.

그러나 정부는 그동안 여론에 밀려 미군 병사들에 대한 재판관할권을 넘겨달라는 실현성 없는 요구를 했다가 거부당한 일 이외에는 사태 수습을 위해 이렇다 할 실효성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반미시위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자 김대중 대통령은 3일과 6일 비로소 SOFA의 개선을 미국측과 협의하도록 지시했다. ‘SOFA의 개선’이란 협정의 개정이 아니라, 운영상의 개선을 의미한다. 김 대통령은 이와 함께 미군의 한국 주둔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무차별적인 반미풍조가 국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또한 SOFA의 문제점과 배심원들의 무죄평결에 분노하는 국민을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데도 실패했다. 심상명 법무장관은 지난달 26일 기자간담회에서 미국과 SOFA를 맺고 있는 세계 80여개국에서 공무 중 범죄에 대한 재판관할권은 모두 미군이 행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즉 한국에 특별히 불평등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미군 병사들에 대한 무죄평결에 대해서는 “미국의 형법에는 차량에 의한 과실치사는 범죄가 안 되는 경우가 많아 민사상의 손해배상으로 대신하며, 죽은 여중생들의 유족들에게는 이미 미국과 한국 정부가 공동으로 1인당 1억9000만원씩 지급했다”고 밝혔다. 이들 두 병사의 경우 미국에서는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심 장관의 이런 견해가 법률전문가의 소신이자 정부의 공식 입장이라면, 일부 반발이 있더라도 이를 널리 알려 국민의 분노를 진정시켰어야 했다.

지금까지의 반미시위는 규모도 컸지만 참가범위가 각계 각층의 인사들로부터 주부와 초등학생들까지 망라하고 있다. 슬로건도 ‘SOFA 개정’과 ‘부시 대통령의 사과’였으나 일부 시위자들은 ‘민족해방 만세’와 ‘주한미군 철수’를 외쳤다.

▼시위단체 ´노선´ 호응 얻을까▼

14일에는 이번 반미시위의 절정이 될 대규모 ‘촛불 평화대행진’이 개최된다.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한 단체는 미군 철수와 자주적 정권수립, 그리고 1국가 2정부를 강령에 밝히고 있는 운동조직이다. 여중생 사망을 ‘살인’으로 규정한 이 단체는 14일을 ‘주권회복의 날’로 선포했다. 한국과의 평등한 동반자 관계를 위해 미국도 반성해야 하지만, ‘주권회복’까지 운위하는 이 같은 노선이 일반 시위자들의 호응을 어느 정도 얻을지 관심거리다. 김 대통령은 반미시위가 ‘SOFA 개정 요구’를 넘어서지 않아 다행이라고 찬양했다. 과연 그럴지 지켜볼 일이다. 후보와 유권자들 모두가 이번 사태를 제대로 보고 선거에 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남시욱 언론인·성균관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