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윤리교사로 있는 한 친구는 학생들이 졸업할 때가 되면 꼭 당부하는 말이 있다고 했다. 사회인이 되면 형식적으로라도 자신이 관심을 갖는 사회단체에 가입하라는 것이다. 활동을 하건 하지 않건 환경에 관심이 있다면 환경단체에, 어려운 이웃을 돌보고 싶으면 이웃사랑의 작은 모임에 가입하라는 것이다. 사회인이 된다는 것은 먼저 사회적 책임을 느끼며 사회의 역할을 분담하는 인간적 성장임을 가르치고 있다는 친구의 말에 나는 전적으로 공감했다. 지식이든 물질이든, 혹 마음이든 서로 나누어 갖는 것으로 두 배 더 행복해진다는 삶의 법칙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 반대의 이유로 지난 추석 고향을 생각하는 나의 마음은 유난히 무거웠다. 평소 부(富)를 과시하는 사람에게 고향 수재민들을 돕는 일을 함께 하자고 권유하다 외면당한 일 때문이었다. 수해의 아픔은 시간이 지나면 재기할 의욕조차 상실한 수재민들에게도 결국 잊혀질 것이다. 하지만 어려울 때 서로 위로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성철스님이 한평생 고군분투하며 얻은 진리를 줄여 가르치자면 너무 단순하다고 했다. 자신을 바로 보고 남을 위해 기도하라는 두 마디가 평생 얻은 깨달음의 전부라고 말씀하셨다. 배움도 끝내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어 내어야 하고, 돈도 결국은 자신의 성실을 담보로 해야 모을 수 있는 것이지만 결국에는 배움도 부도 사회를 위한 것이어야 본래의 책임을 완수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한 사람 한 사람이 내면적으로 함께 사는 일의 소중함을 깨달아야 한다. 나눔의 정신은 인간 생활을 가장 보람되고 의미 있게 하지만 몸소 행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언제인가 방송에서 미국의 일간지 ‘USA 투데이’에서 ‘리틀 아인슈타인’이라고 주목받았던 쇼 야노라는 아이의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다.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이 천재소년은 대학에서 4.0만점에 3.97점을 받아 세상을 놀라게 했는데 그 아이의 천재성보다 부모의 교육방법이 나를 더욱 감동시켰다. 공부를 잘 하고 뛰어난 사람일수록 사회적 책임이 크다는 사실이 천재소년을 키우는 가정교육의 기본이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이웃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에서 부모가 보여주는 생활의 모범은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1주일에 한번씩은 새벽시간을 쪼개어 아이와 함께 노숙자 보호 시설을 찾아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그들 부자(父子)의 모습은 나를 숙연케 했다. 현재의 한국 사회에 진정 필요한 것을 쇼 야노라는 아이를 키우는 교육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개인과 가족의 극단적 이기주의의 병폐에 신음하고 있다. 자식을 위해 분골쇄신하는 부모들의 희생에 이제 더 이상 우리 사회의 미래를 걸 수 없게 됐다. 배우고 가진 자의 생활이 사회의 모범이 되지 못한다면 그 사회는 더 많은 고통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이웃과 나누는 삶이 우리 교육의 목표가 돼야 할 것이다.
안정태 해외개발여행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