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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2002]생산중단 6일째 대우車 부평공장

입력 | 2002-09-02 19:34:00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주변을 정리하시고 안전 점검을 부탁드립니다.”

2일 오후 5시 인천 부평의 대우자동차공장 승용1공장 칼로스 조립라인. 하루 정규작업 시간이 끝날 때면 흘러나오는 사내 방송은 이날도 어김없이 공장 구석구석에 울려퍼졌다. 여느 때 같으면 무리지어 구내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길 근로자들은 보이지 않고 컨베이어 벨트에 걸린 승용차들만 눈에 띈다.

부품업체의 공급 중단으로 생산라인이 멈춘 지 6일째. 조립라인 곳곳에 붙은 품질관리현황판은 8월26일을 가리키고 있다. 전체 조립라인의 이상 여부를 알리는 천장의 전광판 옆에 ‘T-200 성공없이 부평공장 회생없다’는 포스터가 보인다.

T-200은 김우중(金宇中) 전 대우회장이 영국 워딩 자동차연구소에서 개발했던 칼로스의 프로젝트명. 수출시장용으로 개발한 칼로스는 이미 국내 소형차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지만 가동 중단이란 뜻밖의 복병을 만났다.

“부도를 맞은 뒤 1주일에 사흘 이상 일하기 어려웠습니다. 5월부터 칼로스 인기가 치솟아 모처럼 잔업(殘業)을 시작했던 판에 가동중단이라니….”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강모 차장은 울분과 착잡함을 삭이려는 듯 말끝을 흐렸다.

1999년 8월 대우그룹 워크아웃 이후 2년여동안 부평공장에는 구조조정의 강풍이 몰아쳤다. 부도와 법정관리에 이어 미국 GM과의 조건부 매각협상. 결국 지난해 2월 1700여명의 부평공장 직원이 일터를 떠나야 했다.

공장 사수조가 마지막까지 경찰과 대치했던 탈의실 입구. 매캐한 최루탄 냄새는 이제는 자동차 페인트 냄새로 바뀌었다. GM의 인수대상에서 제외된 부평공장 직원들은 “우리만 잘하면 GM이 인수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공정을 설명하던 김성수 부장은 그러나 “칼로스의 호조로 연말 300여명의 옛 동료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지만 이젠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불안해했다.

잦은 가동중단 탓에 생활고에 쫓긴 생산직 일부 직원들은 이미 부근 효성동과 경방동의 인력시장에 ‘출근’하고 있다. 공장이 서면 그나마 얇아진 월급의 30%도 못 받는다. 강 차장은 “조립공장에서 일해온 고참 동료들도 인력시장에선 일용직 잡부 취급을 받는다”며 “하루 6만원을 벌면 성공”이라고 한탄했다.

조립라인 바로 옆 300여평의 자재 대기장. 납품업체의 트럭과 부품라인을 오가는 끌차들이 쉴새없이 만나 적기에 부품을 건네줘야 컨베이어가 돌아간다.

그러나 6일간의 공급 중단은 대기장을 창고로 바꿔놓았다. 한쪽에 놓인 부품 받침대엔 곧 녹이 슬 것 같은 부품들 몇가지만 놓여 있을 뿐 텅 비어 있다.

“공장이 서면 관리 기술직 직원들은 더 바빠집니다. 시커멓게 멍든 가슴으로 일하는 거죠.”

공장설비 담당 한익수 상무는 프레스로 찍어낸 자동차 철판에 행여 녹이 슬까 걱정스러운 듯 연신 전화통을 붙잡고 지시를 내렸다.

부평 사람들의 눈과 귀는 온통 4일 열리는 상거래채권단 이사회에 쏠려 있다. 채권단은 금융단이 최근 내놓은 어음결제기간 단축을 환영하면서도 선뜻 공급을 재개하진 않았다.

협력업체들은 “물품대금을 주지 않으면서 부품을 공급하라니 우리는 어떻게 살란 말이냐”며 대금결제를 촉구하고 있다. 대우차의‘터널의 끝’은 어디일까.

부평〓박래정기자 eco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