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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대표팀 막둥이에게

입력 | 2002-07-09 09:23:00


언젠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톱 가드 전주원 선수와 오랜 시간 독대를 한 적이 있다.

그렇게 대화가 오가던 중 침착하기로 유명한 전주원도 꽤 흥분한 대목이 있었는데, 바로 기자가 던진 "엘리트 출신이라 막내들의 설움을 잘 모르겠다"에서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천재 가드로 칭송 받아온 전주원이지만, 본인 역시 선일 여중 1년생 때 소년체전에 참가하는 선배들의 대표 유니폼을 보고 얼마나 부러웠던지, 그 때부터 불현듯 농구 욕심이 샘솟았다고 항변(?)했다. 그제서야 기자 역시 선머슴 같이 짧은 커트 머리의 초년생 전주원이 경기가 끝난 후 방석이며, 물병을 잔뜩 챙기고 코트를 빠져나가는 모습을 떠올리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어느 조직이건 소위 "밥 그릇 수"로 일컫는 엄격한 선, 후배 구조가 자리잡고 있다. 남자들이라면 어색한 계급구조로 인해 힘겨웠던 군대 시절을 손쉽게 떠올릴 테다. 마냥 천사같은 항공사의 스튜어디스들의 세계가 그 어떤 조직보다 위계질서가 철저하다고 했던 말을 들은 기억도 새록 새록하다.

그렇지만, 아마도 조직력이 생명인 운동부의 선, 후배 체계만큼 명확한 것은 없을 것이리라는 생각이다.

오죽하면 태릉에서 만난 신세계 이언주 선수가 기자를 보고 처음 건넨 말이 "저 이제, 방쫄도 생겼어요. 방장되었다구요." 였을 정도로 선배의 위상은 드높기만 하다.

지난 6월 3일에 막을 내린 제 1회 4개국 초청 국제 여자농구대회 대표 명단에는 삼천포 여고 3학년 곽주영의 이름이 당당히 명시되어 있었다. 이는 박찬숙-성정아-정은순으로 이어지는 한국 여자농구의 4번 째 여고생 국가대표의 탄생이었다.

본인의 영광은 말할 것도 없고, 국가대표 발표가 있었던 다음 날 열린 협회장기 여중부 결승전 삼천포 여중의 경기에서 삼천포의 한 관계자가 본부석 마이크를 쥐고 "저희 삼천포 여고 곽주영 선수가 국가대표에 선발되었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를 격앙된 어조로 인사할 정도로 삼천포 전체의 자랑이기도 했다.

그러나, 기자가 여자 국가대표팀을 태릉 선수촌으로 취재갔을 때 삼천포 전체를 뒤흔든 곽주영도 선배들의 볼을 챙기기에 급급한 막내였다.

언젠가 "최연소 국가대표"의 화려한 꼬리표가 따라다녔던 박찬숙은 당시의 태릉의 막내 생활을 "고통"으로 표현한 바 있다. 적게는 일곱 살부터 많게는 열살 넘게 차이 나는 선배들과 함께 훈련을 받으려니 주눅부터 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계속되는 강훈은 그렇다치고, 궂은 일이 여고생 박찬숙을 힘겹게 했다. "김장할 때나 사용하는 커다란 고무그릇에 가득 쌓인 딸기를 혼자 쪼그리고 앉아 일일이 꼭지를 떼고,씻은 적이 있었어요. 다리가 저리고, 손에서는 쥐가 났지만,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지요." 세탁기도 한 대조차 비치되지 않던 시절, 숭의여고의 명 센터 박찬숙은 선생님의 속옷 빨래까지 전담해야하는 힘겨운 막내 생활을 감내해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