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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칼럼/황호택논설위원]거리에서 즐기는 축구

입력 | 2002-06-05 18:45:00


서울 세종로 일대에 10만 인파가 모인 것은 1987년 6월항쟁 이후 처음이다. 한국-폴란드전이 열린 4일 오후 ‘Be The Reds’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은 젊은이들로 세종로 네거리가 터져나갈 듯하자 경찰은 종로와 신문로 쪽의 차량통행을 막고 인파를 분산시켰다. 경기가 시작되자 붉은 티셔츠의 악마들이 지르는 고함 손뼉 노래 소리가 사대문 안에 울려퍼졌다.

이들은 왜 ‘응접실 소파에 놓인 감자(Couch potato)’처럼 안락한 공간의 텔레비전 시청을 포기하는 것일까. 왜 똑같이 붉은 티셔츠를 입고 혼잡한 대형 전광판 앞으로 몰려든 것일까.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는 5만명이 관람했지만 세종로에서는 그 두 배가 넘는 인파가 경기를 보며 응원을 했다. 대학로 잠실종합운동장 여의도 한강둔치에도 수많은 인파가 나와 쉼없이 손뼉을 치고 ‘대∼한민국’을 외쳤다.

황선홍 유상철이 골을 넣을 때는 일제히 일어나 소리를 지르고 발을 구르며 춤을 추었다. 소파에 놓인 감자들은 도저히 이 분위기, 이 감격을 느끼지 못한다. 전광판 축구 관람은 디지털 전광판과 아날로그의 현장감이 결합한 새로운 축구 감상법이다.

세종로 네거리는 조선 개국 이래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가장 먼저 알린 곳이다. 15년 전 이곳에서 매운 최루 가스를 맡으며 행진을 했던 학생 시민들은 오랜 독재의 질곡을 깨고 자유와 민주의 시대를 열었다. 2002년 월드컵에서 붉은 티셔츠를 입은 젊은이들은 세종로에서 다시 새로운 코드의 문화를 만들어냈다.

젊은이들이 크리스마스 이브에 명동으로 가는 것처럼 월드컵 축구를 보기 위해 세종로로, 대학로로 모여들었다. 디지털 시대의 젊은이들이 거리의 전광판 앞에서 새로운 시대의 도래와 한국 축구의 우렁찬 진군을 환호했다.

황호택 논설위원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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