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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정책대결 뒷전 헐뜯기만 난무

입력 | 2002-06-03 19:26:00

'누굴 뽑을까' - 전주연합


《‘6·13 지방선거’가 실종될 위기에 처했다.

국민의 관심이 월드컵에 쏠린 탓도 있지만 선거전 자체가 상대정당이나 후보자에 대한 욕설과 헐뜯기가 난무하는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장으로 전락하면서 정책대결은 뒷전으로 밀리자 유권자들은 “해도 너무 한다”며 극심한 정치혐오증을 보이고 있다.》

▼중당당 대리전▼

▽중앙당의 대리전〓각 당의 대통령후보와 지도부는 이번 선거를 대선 전초전으로 판단, 지방선거 후보 지원유세를 명목으로 연일 접전지역을 돌며 상대후보를 깎아내리는 '대리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나라당의 '부패정권 심판론'에 대해 민주당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를 겨냥한 '노무현(盧武鉉)-이회창 대결론'으로 맞서자 한나라당은 김대중(金大中) 정부의 치적 과대포장 공세를 벌이는 등 연일 이슈를 바꿔가며 장군멍군식 공방을 벌이고 있다.

민주당은 3일 부산에서 노무현 후보까지 참석한 가운데 최고위원 회의를 여는 등 지도부가 수시로 최일선의 선거현장에 총동원되고 있다. 한나라당도 서청원(徐淸源) 대표가 사흘이 멀다하고 기자간담회나 기자회견을 열어 상대당 후보들의 선거행태를 비난하고 있다.

이처럼 선거 분위기가 중앙당 대결전의 양상을 띠자 기초단체장 후보들까지 자신의 정책과 비전을 소개하기보다는 '고공전(高空戰)'에 편승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3일 경남 의령군수 선거 합동연설회에서 한나라당 후보는 "중앙정치인과 친분이 있어야만 지역을 발전시킬 군수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고, 전남 신안군수 선거 합동연설회에서 민주당 후보는 "정권재창출을 위해 민주당 후보를 밀어달라"고 호소했다.

이 와중에 유권자들은 자신의 지역에 누가 출마했는지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후보와 정치수요자인 유권자간의 거리는 더욱 멀어지고 있다.

▼거듭되는 폭로▼

▽재탕 삼탕 폭로비방전〓정쟁중단 약속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은 걸핏하면 권력비리 등에 관한 TV 청문회와 특검제를, 민주당은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 아들들의 병역비리 의혹 등 지방선거와 무관한 이슈를 고장난 레코드처럼 틀어대고 있다.

민주당은 3일 발간한 당보 '평화와 도약'에서 이 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과 '세풍', '안기부 총선자금 유입사건(안풍)', '손녀 원정출산 의혹' 등을 상세히 소개하는 기획특집을 2개면에 걸쳐 게재했다. 당보에는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가 최근 보도한 '97년 병역비리 은폐 대책회의' 의혹과 '이회창 일가 병역면제자 사유' 등을 총망라해 놓았다.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는 지난달 31일 중앙선대위 간부회의에서 "이 후보는 세풍, 안풍 등 부패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부패원조 정당'을 승계했으면서도 제대로 심판 받지 못했다"고 밝힌 이후 정당연설회마다 이 문제들을 거론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회창 후보대신 당지도부가 앞장서 폭로비방전에 나서고 있다.

서청원(徐淸源) 대표는 3일 기자간담회에서 "지방선거 이후 권력형 비리에 대한 TV청문회와 특검제를 반드시 관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력형 비리 규명을 위한 특검제와 청문회 등은 한나라당이 대여 공세 때마다 내놓는 단골 메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 당직자들은 "권력비리는 정쟁중단과 무관한 만큼 선거기간 중에도 계속 요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swpark@donga.com

▼정책홍보 외면▼

▽정책 경쟁은 뒷전〓선거전이 정쟁으로 시종하면서 정책 경쟁은 아예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각 정당의 중앙당과 광역단체장 후보들은 합동으로 정책공약을 발표했지만, 이를 유권자들에게 홍보하고 정책을 무기로 한표를 호소하는 홍보전은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후보자의 정책을 유권자에게 널리 알리자는 취지로 당선되거나 일정 비율 이상의 득표를 할 경우 국가에서 비용을 사후 보전해주는 신문광고도 연일 상대당과 후보에 대한 비방과 해명으로 채워지고 있다.

서울시장 선거의 경우 민주당 김민석(金民錫) 후보가 "재산이 175억원이나 되면서 의료보험료는 1만5000원대를 냈다"고 한나라당 이명박(李明博) 후보를 비난하자 이 후보측은 "세금을 수억원 냈다"는 반박광고를 즉각 게재했다.

인천시장 선거에서는 민주당 박상은(朴商銀) 후보가 한나라당 안상수(安相洙) 후보를 겨냥해 "룸살롱 경영을 하고 파친코 지분을 갖고 있다"는 내용의 광고를 연 이틀째 신문에 내자 발끈한 한나라당 관계자들이 선관위를 항의방문하기도 했다. 안 후보측도 질세라 연일 성명을 내 "박 후보가 인천 정무부시장 시절 월급은 인천에서 받으면서 거주는 서울에 했다"는 등 정책과 무관한 공세로 맞대응했다.

대전시장 선거에서도 한나라당 염홍철(廉弘喆) 후보측과 자민련 홍선기(洪善基) 후보측이 성명을 통해 '소각로 비리의혹'과 '조경사업 이권개입설' '뇌물수수 전력' 등을 둘러싼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원색발언 난무▼

▽저질 원색 발언 난무〓각당의 대통령후보와 지도부까지 나서 앞장서 유권자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저질 원색 발언을 서슴지 않는 바람에 선거의 혼탁상은 극에 달하는 양상이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가 최근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를 향해 'DJ의 양자(養子)'라고 비난하자 노 후보는 "그러면 부산지역의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회창 후보의 양자냐"고 맞받았다.

노 후보는 3일 부산지역 정당연설회에서 한나라당 안상영(安相英) 부산시장 후보가 서울시 건설본부장 재직 때 한강고수부지 정리사업을 한 것을 겨냥해 "한강을 콘크리트로 싸발랐는데 밥팔아 짬밥 사먹는 것"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 후보도 노 후보의 공세에 맞대응해 '망나니 같은 인사정책' '이런 놈의 나라'(5월30일 강원지역 연설회) 등 험한 말을 마다않고 있다. 또 서청원(徐淸源) 대표는 3일 충북지역 연설회에서 "JP(자민련 김종필·金鍾泌 총재)는 보따리장수처럼 왔다갔다 하다가 DJ와 또 붙었다"는 등 자극적 용어를 동원해 자민련을 맹공했다.

자민련 유운영(柳云永) 대변인직무대리도 한나라당을 향해 "이 나라에 정신착란증세를 보이고 있는 정당이 존재한다는 자체가 창피한 일이다"고 극언을 퍼부었다. 좀처럼 거친 말을 안쓰는 JP도 3일 청주 상당지구당 개편대회에서 한나라당으로 당적을 옮긴 이원종(李元鐘)충북도지사 후보를 겨냥, "패륜아""짐승만도 못한 사람"이라고 맹비난했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