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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한국의 비경]원효대사 전설 깃든 포항 운제산 오어사

입력 | 2002-05-15 17:43:00

포항 오어사 앞의 연못 오어지



《올해가 불기 2546년. 내 종교가 무엇이든 ‘부처님 오신 날’은 기쁜 날이다. 오는 일요일(19일)은 ‘부처님 오신 날’이니 주말에는 산수경계 좋고 신록 우거진 숲속의 사찰을 찾아 봄이 어떠할지. 흔치 않게 물도리동에 자리잡은 비경의 수변 고찰, 경북 포항시 운제산(雲梯山) 오어사(吾魚寺)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신라 원효대사가 요석공주와 사이에 설총을 낳고 실계(失戒)한 뒤 대중속에서 노래와 춤으로 교화를 이루던 때, 원효와 함께 신라 불교 10성에 드는 혜공대사 역시 망태기 진채로 거리에 나가 춤추고 노래하며 불교를 알리던 중이었다. 이 두 스님이 하루는 술병차고 냇가로 나가 물고기를 잡아 안주삼아 한 잔 하고 있었다. 그 때 혜공스님이 느닷없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명색이 중인데 물고기를 잡아 먹고 있으니 누가 볼까 두렵소.” 그러자 원효스님의 대답. “다 먹고 난 다음에 그런 소리를 하면 뭐합니까. 정 그렇다면 산 고기를 뱉어 내면 되지 않겠소.” “스님께서 그런 신통력이 있소.” “해봐야 알지.” “원효스님이 한다면 나도 자신있소이다.” “그러면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여기서 한번 시험해 봅시다.”

▼물고기 안주로 술한잔

이렇게 해서 두 스님의 신통력 대결이 물가에서 벌어졌는데 한 스님은 냇물 상류쪽에서, 또 한 스님은 하류쪽에서 고이춤을 풀고 ‘큰 것’을 보았다던가. 그러자 고기들이 생환, 물안에서 떼지어 몰려 다니는 것이다. 한데 섞인 두 고기떼를 가리키며 두 스님은 서로 내 고기라고 우겼다는 이야기인데, 그 물가에 절이 들어서니 ‘나 오’(吾)자에 ‘고기 어’(魚)자, 오어사가 됐다는 일화가 내려오고 있다.

그 오어사를 찾아 포항을 향했다. 포항시내 오거리에서 포항제철쪽으로 방향을 잡고 오천(읍)으로 가는 길. 포철 지난 뒤 길은 다리 하나를 건너 하천 둑가로 이어졌다. 그 물, 오어사 앞 오어지에서 흘러내린 냉천. 오천에 당도하니 길은 호젓한 계곡으로 접어들고 한참을 달리다 사하촌에 이르렀다.

마을 지나 왼편으로 큰 제방에 가로막힌 계곡이 보이고 오르막의 제방 위쪽에 올라서면 큰 연못, 오어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계곡 양편의 숲그늘 탓에 물은 온통 진초록빛 일색. 그 수면에 빠진 5월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선경이다.

연못가로 난 꾸불꾸불한 길, 몇구비나 돌았을까. 막다른 길(주차장)이다. 왼편은 연못, 오른편은 산(운제산), 오어사는 정면에 있었다. 물가로 난 길 하나가 절 건너 저편 계곡을 잇는 유일한 통로다. 절 담장 끼고 연못가로 난 길로 몇발짝을 옮기니 일주문이 나타난다. 오어사는 크지 않았다. 대웅전 응진전 산신각 범종각 등 당우 몇 채뿐. 그 가운데 유물전시관이 보였다. 유서깊은 고찰임을 단박에 알수 있는 대목이다. 원효대사가 쓰셨다는 삿갓도 있었다.

지금 경내는 만발한 진분홍빛 연산홍으로 꽃대궐을 이뤘다. 이제 며칠후면 부처님 오신 날. 평소 같으면 저녁공양 마친 지금은말 그대로 ‘절간’일텐데 행사 준비로 부산했다.

신라 진평왕때 창건된 이 절은 신라 사대조사(원효 혜공 자장 의상)가 수도했던 명찰. 원효 혜공 자장 그리고 의상, 이렇게 큰 스님 네 분을 이름인데 절 주변의 암자(원효암 자장암)가 그런 역사를 말해준다. 원효암은 다리 건너 계곡 깊이, 자장암은 절을 품은 운제산 꼭대기 바위에 있다.

원효암 가는 길에 지나는 원효교, 이 다리와 다리 건너 물가에서 바라보는 오어사와 연못이 어울림은 빼어나다. 수면에 비친 사찰의 담장과 장독대, 다리에서 감상하는 수많은 방생 물고기의 유영 모습 등등. 가파른 산정의 아슬아슬한 자장암 풍치도 빼놓지 말자.

그 자장암, 보기 보다는 오르기가 쉽다. 주차장에서 오르는 등산로가 있는데 거리가 200m, 넉넉잡고 10분이면 오른다. 한뼘의 평지가 귀한 옹색한 산정이지만 관음전 나한전 산신각에 선방까지 있었다. 여기 연등에 불밝히면 오어사에서 올려다 뵈는 모습이 기막힐 것 같았다.

▼굽이굽이 계곡 한눈에

절뒷산 정상의 자장암에서 내려다 보이는 운제산 계곡 풍경. 왼편 숲속에 절 지붕이 보인다.

자장암에서 내려다 본 오어사와 계곡의 경치. 실로 압권이었다. 첩첩이 두른 근방 산악의 마루금은 물론 연못을 향해 굽이굽이 흘러드는 계곡물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물가의 숲에 살포시 가린 오어사 당우의 지붕. 절벽위에 앉아 이 선경에 빠지면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시간의 흐름을 잊고 만다. 이곳서 수도하던 스님들이 계곡의 구름을 사다리삼아 이산 저산을 오갈 수 있었다 해서 이름붙였다는 산이름 ‘운제’(구름 雲, 사다리 梯)는 여기서 보면 딱 그대로다.

자장암에서 이뤄진 뜻밖의 만남은 부처님 진신사리가 봉안된 세존진보탑. 98년 스리랑카에서 모셔온 사리인데 봉안후 불가사의한 일이 여러차례 일어났음을 알리는 비문의 글은 한번 쯤 읽어 볼만 하다. 자장암 정염(주지에 해당) 법승(法承)스님은 “관음보살을 모시는 자장암은 예로부터 기도 효험이 높기로 잘 알려진 곳이지만 빗물이 새는 등 손볼 곳이 많아 개축불사를 계획중”이라며 “선경을 두루 살필수 있는 전망좋은 곳에 조용한 찻집도 두어 찾는 분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포항〓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

◇식후경

▼단풍나무…찬밥…양푼이 비빔밥

오어사를 7㎞ 앞둔 문곡초등학교 앞 삼거리. ‘감포 33㎞ 양북 24㎞’라고 쓰인 14번국도 이정표 밑에는 ‘천년고찰 방생도량 오어사’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여기서 3㎞를 더가면 용산주유소 삼거리. 오어사로 가려면 직진하는 14번 국도를 버리고 오른편으로 접어든다. 여기서 부터는 호젓한 산길. 조금 가다 보면 왼편에 장짓문이 달린 전통가옥 앞에 ‘山下村’(산하촌)이라고 새긴 나무간판이 보인다. 그러나 더 눈에 띄는 것은 집 앞에 걸어둔 ‘양푼이 비빔밥’이라는 특이한 메뉴.

구멍 뻥뻥뚫린 장짓문 열고 들어선 실내는 아늑한 시골집 분위기다. 서까래 대들보 그대로 드러낸 지붕은 온통 초서 예서의 글씨로 뒤덮인 한지로 도배됐고 사방은 온통 황토벽이다. 원목을 잘라 만든 식탁과 긴 의자, 그 가운데 황토를 덧씌운 장작난로가 온기를 풍기고 있었다. 스피커에서는 그룹 ‘산울림’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등 70년대 가요가 줄줄이 이어졌다.

‘386세대’에 한 수 뒤처진다해서 숫자를 하나씩 뺐다는 ‘275세대’를 위한 공간이 틀림없었다. 그래 주인(이갑종씨·48)에게 물었더니 대답은 역시. “30∼50대를 위한 식당겸 찻집”이라는 것이었다. 이 집을 지은 이씨는 직접 생활 도자기를 굽는 도자기 장인. 찻잔 접시 등 산하촌의 모든 그릇은 그의 손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음식은 여주인 홍정자씨(45)의 작품이다.

“양푼이 비빔밥은 어릴 적 시골에서 양푼에 찬 밥 넣고 찬장에 남아 있던 반찬 쏟아 부은 뒤 써억써억 맨손으로 비벼주시던 어머니의 그 비빔밥 맛을 내려고 한건데….” 여주인 홍정자씨(45)의 말이다.

큰 양푼안에는 참나물 단풍나물 치커리 쑥갓 등 생야채와 무채 쇠고기 호박 당근 볶은 것과 참기름이 들어간다. 열무물김치등 곁다리 반찬도 대여섯가지나 된다. 화학조미료를 일체 쓰지 않고 집간장과 집된장만 넣어 칼칼한 맛이 달달한 여염집 식당 비빔밥과 다르게 소박하기만 하다. 5000원. 동태찜(5000원)도 특미. 연중무휴. 054-291-2039

◇여행정보

▽찾아가기 △손수운전〓경부고속도로/영천IC∼28번(국도)∼안강∼7번(국도)∼포항(오거리)∼14번(국도)∼오천(이정표 따라 감)∼오어사 △대중교통〓서울(동서울터미널·446-8000)↔포항(시외버스터미널·054-274-2311), 포항↔오천(300번·시내버스). ▼사찰 종무소(054) △오어사 292-9554 △자장암 285-0129 ▼특별행사(자장암 연등터널)〓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등반로(자장암∼주차장)에 연등을 줄지어 매달아 행사 전후 몇일간은 연등터널을 통해 암자를 오르내리는 진귀한 경험도 할 수 있다.

◇함께 떠나요

호미곶 해맞이공원에서 일출감상후 구룡포 어항까지 해안가를 드라이브 한다.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연등으로 뒤덮인 오어사와 오어지, 자장암을 둘러 본 뒤 해물전으로 유명한 포항시내 죽도어시장에 들르는 코스(무박2일). 18일 출발, 4만8000원. 승우여행사(www.swtour.co.kr) 02-720-8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