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꿔!바꿔! 다 바꿔!’ 2002 프로야구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스트라이크존이 변경됐고 각 구장은 ‘새색시’ 마냥 단장을 다시 했다. 국민타자 이승엽(삼성)과 이종범(기아)은 타격폼을 바꿨고 프로에 뛰어든 새내기들은 그라운드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새 출발하는 2002프로야구의 ‘모든 변화’를 들여다 본다.》
선수들이 몇 년간 고수해오던 자신의 폼을 바꾼다는 건 쉽지 않은 일. 꾸준히 성적을 낸 정상급 선수일수록 더욱 그렇다.
기아의 ‘야구천재’ 이종범(32)과 삼성 ‘홈런왕’ 이승엽(26). 둘은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하는 간판타자. 일본 프로야구에서 돌아온 이종범은 지난해 2개월 여의 공백 뒤 후반기부터 한국무대에 복귀했으면서도 타율 0.340의 놀라운 타격솜씨를 보여줘 “역시 이종범”이란 찬사를 들었다. 이승엽은 지난해 39홈런으로 개인통산 세 번째 홈런킹에 오른 거포.
뛰어난 타격감각을 타고난 둘은 ‘그럭저럭’ 야구를 해도 각각 타율 3할과 홈런 30개는 거뜬히 때려낼 수 있는 타자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올시즌 ‘편안함’을 버리고 ‘모험’을 선택했다. 기존의 틀을 깨기 위해 나란히 타격폼 변경을 시도한 것. 이유는 똑같다. “야구를 좀더 오래하고 잘 하기 위해서”다.
이종범은 지난해까지 타격전 양손으로 쥔 방망이를 투수쪽으로 심하게 기울였다. 방망이가 거의 오른쪽 귀밑에 닿았을 정도. 하지만 스프링캠프에서부터 배트를 하늘로 똑바로 곧추세우는 폼으로 바꿨다.
“지난해 복귀해서 타율 3할4푼을 쳤지만 사실 운이 좋았다. 투수들을 제대로 공략해서 낸 성적이 아니었다. 특히 몸쪽 공에는 번번히 당했다. 이젠 나이도 있고 전성기처럼 배트스피드를 내기 힘든 만큼 몸쪽을 공략하기 위해선 나름대로 변화가 필요해 폼을 수정하게 됐다.”
이종범은 시범경기에서 4할대의 맹타를 휘둘러 변신은 일단 성공적. 그는 “바뀐 타격폼에도 적응을 잘 하고 있고 스프링캠프에서 열심히 웨이트트레이닝을 한 덕에 체력적인 부분도 지난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져 컨디션이 최고조에 달해 있다”며 정규시즌이 개막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이승엽은 올시즌 특유의 ‘외다리 타법’을 버렸다. 그는 “그동안 홈런을 많이 때려내긴 했지만 사실 ‘외다리 타법’은 삼진을 많이 당하는 등 허점이 많았다”고 밝혔다. ‘외다리 타법’은 한번에 힘을 모을 수 있어 파워배팅엔 좋지만 변화구에 배팅타이밍을 맞추기 어려운 타격스타일. 허리까지 치켜들던 오른 다리를 내리자 주위에선 “홈런이 줄지 않겠느냐”는 우려를 했지만 이승엽은 시카고 컵스의 초청선수로 미국 프로야구 시범경기에 참가, 2홈런을 날렸고 국내 시범경기에서도 3경기 연속홈런을 터뜨리는 등 변함없는 장타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는 “아직 새 타격폼이 완전한 건 아니다. 하루아침에 적응이 되겠느냐. 하지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올해는 무조건 바뀐 타격스타일을 지켜나간다. 야구를 오래하기 위해선 꼭 필요한 과정”고 말했다. 2년후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리고 있는 이승엽은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에 새 타격법을 꼭 완성하겠다는 의지다.
김상수기자 ssoo@donga.com
▼스트라이크존 15㎝ 확대 승부 변수로
올해 도입된 스트라이크존의 상한선 확대는 가히 국내 프로야구 20년사의 ‘태풍’으로 불릴 만하다. 심판 판정이 경기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한 야구에서 타자의 허리 벨트에서 팔꿈치까지 공 2개(15㎝)나 올라간 새 스트라이크존은 승부의 주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스트라이크존의 상한선 확대는 이미 시범경기를 통해 큰 변화를 몰고 왔다. 지난해 시즌에 비해 타율(0.274→0.268)과 평균자책(4.71→4.50)이 동시에 내려가 ‘타고투저’의 완화가 두드러진 것.
특히 경기당 볼넷은 8.19개에서 5.39개로 곤두박질쳐 경기의 스피드업에 일조했다. 홈런(2.01개→1.86개)은 줄어들고 삼진(12.1개→13.5개)은 늘어났다. 국내보다 1년 먼저 이 스트라이크 존을 도입한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변화 수치와 거의 일치하는 수준이다.
그러면 과연 누구에게 유리할까. 커브를 주무기로 하고 제구력이 뒷받침된 투수라면 고기가 물을 만난 경우다. 높아진 스트라이크존은 타자의 머리에서 떨어지기 시작해 포수의 이마에 걸치는 공만 던지면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게 된다. 지난 겨울 스프링캠프에서 투수들 사이에 커브 배우기 열풍이 분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제구력이 좋으면 코너워크를 할 공간도 넓어졌다. 강속구 투수도 힘이 떨어지지만 않으면 높은 공 승부로 재미를 볼 수 있다.
투수력이 좋은 팀의 승률이 올라갈 것이란 예상도 해볼 수 있다. 삼성 현대의 2강 후보 외에 하위권의 롯데에도 눈길이 쏠린다.
그렇다고 타자가 절대 불리하다고만은 볼 수 없다. 삼성 이승엽이나 기아 이종범, LG 이병규 같이 적극적인 타격을 하면서 갖다맞히는 재주가 뛰어난 타자는 오히려 투수의 높은 쪽 실투를 노릴 수 있게 됐다.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
▼새내기 선수들 投高打低
국내 프로야구의 인기가 시들해지기 시작한 시점은 공교롭게도 슈퍼 루키의 명맥이 끊긴 때와 일치한다. 96년 현대 박재홍, 97년 LG 이병규 이후 야구 팬은 새내기 영웅의 탄생을 기다려왔다.
5년이 흐른 2002시즌 프로야구는 근래 보기 드문 신인 풍년에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신인 돌풍의 핵은 누가 뭐래도 기아의 오른손 정통파 투수 김진우(19). 7억원으로 97년 현대 임선동에 이어 역대 신인 최고 계약금 타이기록을 세운 그는 시범경기에서부터 스피드건에 손쉽게 150㎞를 찍으며 최동원-선동렬-박동희-이상훈으로 이어져온 초특급 투수의 계보에 이름을 올릴 태세.
불같은 강속구와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파워 커브가 주무기로 달라진 스트라이크존의 수혜자가 될 전망. 시범경기에서도 3경기에 선발로 나가 11과 3분의 2이닝동안 삼진 15개를 잡는 위력 투구를 선보였다.
4년전 황금사자기 고교야구대회에서 순천 효천고 돌풍의 주역이었던 기아 강철민(23)과 현대 조용준(23)도 태극마크의 명예를 앞세워 고졸 김진우에 쏠린 팬들의 관심을 돌려놓을 것은 선언했다.
1m90의 큰 키에서 찍어대는 강속구가 일품인 강철민은 시범경기에선 평균자책 8.18로 부진하지만 선발 한 자리는 예약한 상태. 조용준은 현대의 마운드가 두터워 중간계투로 나서지만 4경기에서 1승1패 1세이브에 평균자책 1.23을 기록한 즉시 전력감이다.
계약금은 2억원으로 상대적으로 적지만 한화 마정길(23)이 5경기에 나가 1세이브를 따내며 평균자책 2.08의 안정된 투구를 하고 있는 것도 특색.
반면 타자쪽에선 크게 눈에 띄는 선수가 없다. 3억5000만원으로 야수 최고액을 받은 기아 이현곤(22)은 만능 내야수로 ‘제2의 이종범’으로 불렸지만 타격에선 1할대를 간신히 턱걸이하며 프로의 매운 맛을 실감하고 있다.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
팀선수포지션출신교계약금
기아김진우투수진흥고7억원
강철민투수한양대5억원
이현곤내야수연세대3억5000만원
현대조용준투수연세대5억4000만원
이대환투수동국대3억1000만원
김민우내야수한양대3억4000만원
LG김광희투수성남고3억2000만원
박용택외야수고려대3억원
SK제춘모투수동성고2억8000만원
윤길현투수대구고2억8000만원
한화마정길투수단국대2억원
삼성현재윤포수성균관대1억8000만원
롯데이정민투수동아대1억8000만원
두산유재웅외야수건국대1억5000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