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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포커스]민영화 1년 두산重 “바꿔 다 바꿔”

입력 | 2002-02-24 17:11:00


“사장에서 현장 공장직원들까지 무엇을 하더라도 원가부터 계산하게 됐습니다. 민영화 이전에는 납기일만 생각하면 됐지, ‘돈이 남는다, 안 남는다’는 개념은 머리 속에 없었습니다.”

경남 창원에 있는 두산중공업 원자력공장의 장진환 기장(사무부서의 부장급)은 24일 민영화 이후의 직장 분위기에 대해 “이익을 내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위기의식이 현장에까지 자리잡았다”는 말로 압축해 설명했다.

연매출 2조∼3조원을 헤아리는 한국의 대표적인 공기업 가운데 하나였던 한국중공업이 정부의 민영화 추진계획에 따라 두산그룹에 넘어가 두산중공업으로 바뀐 지 1년. 지금 이 회사에 조용하지만 거대한 변화의 바람이 서서히 일고 있다.

▽‘모두의 책임’에서 ‘나의 책임’으로〓민영화 이후의 변화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성과와 책임’이다. 두산그룹이 지난해 2월15일 한국중공업을 인수하면서 가장 먼저 착수한 작업이 조직개편.

생산본부, 기술본부처럼 기능별로 돼있던 조직을 원자력BG(Business Group), 중제관BG, 발전기BG 등 사업부제로 바꿨다. BG가 하나의 사업부가 돼서 수주에서 생산 판매까지 모든 것을 책임지라는 것이었다. 이 성과에 따라 BG별로 임금도 달라진다. 과장급 이상은 모두 연봉제를 도입해 개인별로도 성과급을 지급하게 했다.

한국중공업 시절에는 정부나 공기업인 한국전력이 좀 비싼 가격이더라도 같은 공기업인 한국중공업에 일감을 주고, 외국에서도 정부보증으로 수주를 할 수 있어 온실 속에서 장사를 해온 셈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안전장치가 모두 사라졌다. 철저하게 성과를 따지지 않을 수 없게 된 것.

변화는 개인차원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터빈3과의 허정배 반장은 “지난해부터 자격증 공부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며 “나도 기사자격증 학원에 원서를 냈고 대학졸업장도 딸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이 회사에서 기술사자격증을 딴 직원은 54명. 이전에는 2, 3명에 불과했다. 그만큼 직원이 몸값을 높이기 위해 애쓴다는 뜻이다.

▽제1의 판단 기준은 ‘효율’〓중제관 공장의 유송태 직장(과장급)은 “직원들 사이에서도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사고방식이 없어져가고 있다”며 “회사 내 다른 사업부가 만들고 있는 부품이라도 단가가 비싸면 회사 밖의 다른 공장에 하청을 주는 것이 당연한 일로 여겨지게 됐다”고 귀띔했다. 비효율적인 행동으로 자기 사업부의 실적이 떨어져 부서원 전체에까지 피해가 확산되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구매방식도 확 달라졌다. 과거에는 공개입찰만이 유일한 구매방식이었으나 이제는 전자입찰을 함께 실시해 협력업체들이 서로 낮은 가격을 부르도록 유도했다.

임원수는 한국중공업 시절의 70명에서 현재는 박용성 회장을 포함해 38명으로 줄었다. 모두 전문가들이다. 과거처럼 사업과 전혀 무관한 군출신 장성이나 정부관료출신은 한 명도 없다.

두산중공업 최송학 부사장은 “시스템이 변하니까 경영진의 행동패턴들도 달라졌다”며 “다른 데 눈치 안 보고 오로지 수익, 현금흐름 위주로만 판단하니까 의사결정이 훨씬 빠르고 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두산중공업은 민영화 2년차인 올해 경영목표액을 △수주액 5조1006억원 △매출액 2조9539억원 △영업이익 2212억원 △순이익 1301억원으로 잡고 있다. 지난해보다 수주액과 매출액은 각각 41%와 20% 늘어난 수준이고 특히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무려 244%, 425%로 높여 잡았다.

▽본격적인 변화와 성과는 이제부터〓대기업 구조조정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던 두산그룹이 한중을 인수했을 때 재계는 깜짝 놀랐다. 가업이던 맥주사업을 버리고 남들이 다 기피하는 중후장대(重厚長大) 산업을 택했기 때문.

이에 대해 두산그룹 구조조정본부의 박용만 사장은 “기업의 결정에는 앞으로 현금을 벌어들일 수 있는 사업이냐 아니냐가 더 중요하지, 중후장대냐 경박단소(輕薄短小)냐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면서 “인수결정 과정에서 한국중공업의 기술력이나 시장여건으로 볼 때 앞으로 2∼3년 내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울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고 강조했다.

▽피곤해진 것은 사실〓현장에서 만난 대부분의 직원들은 피부로 느끼는 민영화에 대해 “솔직히 이전보다 훨씬 피곤해졌다”고 털어놓았다. 박노철 직장은 “온실의 비닐지붕이 갑자기 확 벗겨진 느낌”이라며 “그래도 시대 흐름이 그런 만큼 언제까지 경쟁력 없는 회사로 남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고 말했다.

또 민영화 이후 생긴 고용불안과 복지축소는 아직도 회사와 노조의 예민한 쟁점으로 남아있다. 강웅표 민주노총 두산중공업 지회장은 “민영화 1년 만에 1000명 이상이 명예퇴직으로 나간 이후에도 고용불안이 계속되고 있다”면서 “사원아파트 학자금지원 등 과거의 복지가 대폭 줄고 있어 될 수만 있다면 옛날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창원〓김광현기자 kk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