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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프로야구]‘가을의 잔치’ 전설이 되련다

입력 | 2001-10-19 14:51:00


‘진검 승부’ ML 포스트시즌 관전 포인트 … 애리조나 승부사 김병현 활약 한국 팬 ‘흥분’

월드트레이드센터 테러참사와 이어진 아프가니스탄 폭격. 세상은 어지럽게 돌아가지만 ‘경기는 계속된다.’ 미국은 지금 ‘국민의 여흥’으로 불리는 메이저리그(ML) 포스트시즌이 한창이다. 특히 지난 13일(이하 한국시간)엔 김병현이 내서널리그 디비전시리즈에 첫 등판해 세이브를 따냈다. ML 선배인 박찬호(LA다저스)도 밟아보지 못한 마운드. 그의 나이 현재 22세임을 감안하면 정말 대단한 사건을 저지른 셈이다. 물론 해마다 두 자리 승수를 거두고도 투·타 불균형으로 포스트시즌 마운드에 오르지 못하는 박찬호로서는 씁쓸할 게 틀림없지만.

‘가을의 고전’(Fall Classic)이라는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은 30개 팀 중 단 8개 팀만 초대받는 ‘승자들의 잔치’다. 양 리그 동·중·서부조 1위 팀과 1위를 제외한 각 리그 최고 승률팀이 와일드카드를 획득, 디비전시리즈·챔피언십시리즈를 거쳐 대망의 월드시리즈를 치른다. 여름 내내 세계 최고 선수들이 비행기에 몸을 싣고 동서와 남북을 가로지르며 162게임을 치르는 까닭이 모두 포스트시즌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지난주에는 90년대 최고 팀이라 불리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가 일찌감치 중부지구 1위 팀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3대 0으로 누르고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파트너를 고르고 있다. 누가 진정한 강자인지 가리는 진검승부의 세계, 2001시즌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을 10배 재미있게 보기 위한 포인트를 알아보자.

리바이벌과 신상품의 동시 출격

최근 몇 년 간 메이저리그의 가장 큰 고민은 투수 가뭄이었다. 그렇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다르다. 발군의 실력을 자랑하는 신예 투수들이 몸을 가다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의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는 이른바 ‘영건(young gun) 3인방’으로 구성된 완벽한 1, 2, 3선발체제를 구축했다. 마크 멀더(21승)-팀 허드슨(18승)-배리 지토(17승)로 이루어진 20대 선발 트리오는 역대 최강으로 꼽힌다. 이미 멀더와 허드슨은 20세기 최고 팀이라는 막강 뉴욕 양키스에 2연승을 거두는 파란을 일으킨 바 있다. 영원한 20승 투수이자 현존하는 최고 투수로 꼽히는 로저 클레멘스도, 좌완 앤디 페티트도 미국 서부에서 건너온 젊은이들과의 마운드 힘겨루기에서 무참히 패했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 시드니올림픽 스타 로이 오스왈트와 웨이드 밀러 듀오가 속한 휴스턴은 그렉 매덕스, 톰 글래빈 등 노장 투수들과의 대결서 완패했다. 한마디로 아메리칸리그는 젊은 투수들의 ‘무서운 반란’, 내셔널리그는 노장들의 ‘명불허전’(名不虛傳)을 보여준 셈이다. 2001디비전시리즈에서 랜디 존슨과 로저 클레멘스 등 메이저리그의 대표적 좌·우완 투수도 큰 경기에 약한 모습을 다시 한번 노출했다. 특히 랜디 존슨은 지난 11일 세인트루이스와의 내셔널리그(NL) 디비전시리즈 2차전에서 패해 ‘포스트시즌 7연패’라는 믿기 어려운 불운을 맛봐야 했다. 이는 마치 80~90년대 한국시리즈만 다가오면 부상과 슬럼프에 시달린 선동렬(당시 해태)을 연상케 한다.

간 큰 승부사, 거침없이 나간다

뭐니뭐니 해도 메이저리그 가을잔치의 최대 관심사는 한국인 특급 잠수함 김병현의 활약상이다. 이미 세인트루이스와의 적지 승부(10월13일 부시스타디움)에서 역사에 남을 첫 세이브를 거둔 김병현이 앞으로 얼마만큼의 상승세를 타느냐는 것. 13일 경기에서 김병현은 얼어 있었다. 구위 역시 들쭉날쭉해 평상시 그의 모습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 그러나 김병현은 맥과이어를 병살타구로 처리하며 애리조나의 5대 3 승리를 지켜냈다.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 마운드에서 일궈낸 쾌거다.

그러나 풀타임 리거 3년차의 과감함도 좋지만 다소 불안한 모습을 노출한 것도 사실. 한국 팬들은 앞으로도 주요 승부처에서 김병현 대 각 팀 슬러거들과의 승부를 연이어 보게 된다. 세인트루이스를 격파한 애리조나는 리그 챔피언십시리즈서 애틀랜타와 맞붙는다. 현재 애틀랜타의 마무리는 팔꿈치 부상 이후 마무리를 맡고 있는 백전노장 존 스몰츠. 이들의 맞대결을 지켜보는 것 역시 올 포스트시즌에서 놓쳐서는 안 될 포인트일 것이다.

특히 애틀랜타의 수장 바비 콕스 감독이 김병현에게 잊을 수 없는 수모를 안겨준 인물이라는 사실도 기억해둘 만하다. 지난해 올스타전 내셔널리그팀 감독인 바비 콕스가 전반기 놀라운 활약을 보인 김병현을 놓고 ‘직접 등판 경기를 보지 못했다’며 올스타전 추천투수에서 제외한 것. 이제 빚을 갚을 때가 왔다.

야구 천재 이치로의 행보

타율, 최다 안타, 도루 등 메이저리그 데뷔 첫해에 무려 3개 부문을 석권하며 열풍을 일으킨 시애틀 매리너스 소속 이치로의 공수에 걸친 활약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현재 이치로는 신인왕은 물론 MVP까지 거론되고 있는 상황. 만약 시즌 최다승을 거둔 무적의 시애틀을 이끌고 이치로가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진격한다면 신인왕과 MVP를 동시에 석권할 가능성도 있다. 신인왕과 MVP를 한 해 동시 수상한 것은 1975년 보스턴 레드삭스의 프레드 린(보스턴)이 유일하다. MVP를 결정할 기자단 투표는 월드시리즈가 종료된 뒤 실시될 예정.

현재 ‘빅맥’ 마크 맥과이어를 제치고 세인트루이스의 4번 타자를 꿰찬 앨버트 푸홀스도 내셔널리그 신인왕 등극이 확실하다. 세인트루이스가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다면 역시 MVP 투표용지를 받은 야구기자단의 머릿속이 다소 복잡해질 게 틀림없다.

우승반지는 누구의 손에

마지막까지 관심을 끄는 것은 결국 우승팀. 그중에서도 뉴욕 양키스의 행보다. 지난해까지 시리즈 3연패의 위업을 달성하며 20세기를 마감한 뉴욕 양키스가 4연패의 신기원을 달성할지 여부는 커다란 관심사다. 거꾸로 ML 역사상 시즌 최다승 타이(116승)의 막강 전력을 보유한 시애틀 매리너스가 과연 제1관문인 1차전서 탈락할지도 흥밋거리. 손쉽게 시리즈 진출을 예상한 시애틀은 클리블랜드에 2승1패로 몰렸다가 15일 이치로의 활약으로 극적으로 되살아났다. 뉴욕 양키스 역시 오클랜드에 2연패로 몰렸다가 2승을 거두며 겨우 균형을 맞췄다. 시애틀과 양키스가 동시에 탈락한다면 엄청난 이변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사상 처음으로 와일드카드 획득 팀끼리의 시리즈 맞대결이 성사될지도 관심거리다. 내셔널리그는 맥과이어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아메리칸리그는 오클랜드 어슬레틱스가 각각 와일드카드를 따내 디비전시리즈에 진출했는데 이들의 기세가 만만치 않다. 와일드카드제가 실시된 뒤 최초로 우승한 팀은 지난 97년의 플로리다 머린스. 당시 케빈 브라운(현 LA다저스)을 앞세워 시리즈 패권을 차지한 바 있다. 와일드카드 획득 팀끼리의 월드시리즈 맞대결은 이제껏 한 번도 없었다.

시카고와 미네소타의 초반 돌풍, 메이저리그 통산 최다 출장을 달성한 칼 립켄 주니어(볼티모어), 영원한 3할타자 토니 귄(샌디에이고)의 은퇴, 테러 여파로 인한 시즌 중단 등 갖가지 소식으로 가득했던 2001시즌이 대망의 포스트시즌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올 시즌 마지막 메이저리그 뉴스가 ‘월드시리즈 7차전 김병현 세이브 달성’이기를 바라는 것이 기자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