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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 희망이다]교육과정-교사채용 자율결정

입력 | 2001-10-12 18:37:00


《학교는 학교 당국과 교사의 전유물이 아니다. 학교 구성원인 교사 학생 학부모가 능동적으로 교육에 참여할 때 교육활동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교육목표를 원활하게 달성할 수 있다. 학생들은 자치생활을 통해 민주시민 교육을 배우고 학교는 자율과 책임을 바탕으로 철저한 평가를 통해 교육의 질을 높이려고 노력해야 한다. 외국의 사례를 보고 국내 현실을 점검해보자.》

“학생들이 학교에서 해주길 바라는 사안을 파악해 정례 학교운영위원회 회의에 의제로 제출하고 학운위원들이 논의해 해결책을 찾죠.”

뉴질랜드 북섬 네피어시 타마티아고교의 학운위 학생 대표인 레이첼 맥카시(18·여)는 “학부모 교사 등 다른 위원들이 학생이라고 무시하지 않고 동등한 위원으로 인정해 의견을 주의깊게 듣는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타마티아고교의 전교생은 320명. 이 학교 학운위는 학부모 대표 5명, 교직원 대표 1명, 학생 대표 1명 등 7명으로 구성돼 있다. 학부모 대표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선거에 의해 선출되고 임기는 3년이다. 학생 대표는 고교 2년생 이상의 학생 가운데 선출된다.

학운위는 교육과정, 학교정책, 교사채용, 수행평가, 교장 감독 등 학교에 관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진다. 대개 매달 한번씩 회의를 갖고 학교 운영에 대해 논의하고 교장으로부터 학교경영 보고를 듣는다.

학운위는 교장의 상급기관이어서 교장과 학운위 사이에 의견 차이가 생기면 골치아픈 문제가 발생하지만 이견이 다툼이나 대립으로 번지는 경우는 드물다. 대화와 협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시스템이 정착됐기 때문이다. ‘배에 탄 사람들의 목숨이 파도에 위태롭지 않도록 노련하게 배를 조정하라’는 구호를 이 학교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학운위가 모든 것을 책임지는 시스템은 뉴질랜드 교육개혁을 성공시킨 요인으로 꼽힌다. 뉴질랜드의 교육개혁을 전문가들은 ‘하룻밤의 개혁’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교육 개혁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뉴질랜드는 면적이 남한의 3배나 되지만 인구는 겨우 380만명이어서 ‘통제 가능한’ 소규모 국가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전국의 초중고교와 대학의 교육 수준이 균질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같은 성공의 비결이 학부모 교사 학생이 함께 참여하는 학교운영위원회(Board of Trustees)다. 뉴질랜드 정부는 89년 교육개혁을 단행하면서 교육의 질을 높이는데 정책의 초점을 맞췄다. 과거의 중앙집권적 관료체제를 해체하고 학교 교육을 학운위가 맡도록 했다.

새 교육법은 학운위가 스스로 자신들의 학교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를 정하고 책임을 지도록 했다. 법은 막강한 학운위의 권한과 의무 등에 대해 세세하게 규정하지 않고 대체적인 테두리만 정했다.

학운위가 임명하는 교장은 학운위의 결정사항을 집행하는 전문경영인으로 항상 학운위와 협의하고 학운위원은 학교 규모에 따라 4∼16명이며 학부모 대표는 4∼7명이라는 등 운영의 틀만 마련돼 있다. 이는 학교에 관련된 모든 일을 지역이나 학교 실정에 맞게 결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전국 학교에 설치된 2600여개의 학운위는 운영 방식이 모두 제각각이어서 학교마다 나름대로 특장(特長)을 갖고 있다. 과거처럼 중앙 정부의 프로그램에 따르는 학교에서부터 지역 사회간 협력에 기초한 협력학교, 이 두가지 방식을 절충한 학교 등 학교 형태까지 학운위가 결정하기 때문이다.

뉴질랜드처럼 강력하지는 않지만 많은 나라가 학운위를 운영하고 있으며 학부모 학생들이 학교 운영에 깊숙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고 있다.

호주는 ‘학부모협의회(Parents & Citizen)’를 통해 학부모들이 학교 운영에 간접적으로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P&C는 학부모나 지역 주민 등 학교 교육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회원으로 등록하고 참여할 수 있게 문호를 개방했다. 교장이 지명하는 교직원도 회원이 될 수 있다. 회장, 부회장, 회계, 총무로 집행부를 두고 학교 살림을 보좌한다.

시드니 하코트 초등학교 P&C는 20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매주 월요일 오전 열리는 회의에는 통상 10명 정도가 참석한다. 기자가 방문한 날 회원들은 매점운영 등 갖가지 사안을 놓고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아랍계 이민자로 보이는 학부모는 서툰 영어지만 자신들의 의견을 표현하려고 애를 썼다.

“매점에서는 인스턴트 푸드를 팔지 않도록 하고 대신 샐러드나 샌드위치를 팔았으면 좋겠어요.”

“학교 극장에서 핸드폰을 켜놓는 학생들이 많아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된다. 빈 교실에 전기불을 켜놓지 않도록 하자.”

이 학교 워런 노먼 교장은 “도서관에 책이 많이 부족하다. 영어 중국어 한국어 아랍어책 등 어떤 도서라도 좋으니 기증해달라”고 당부했다.

재무담당자는 “상반기 동안 매점을 운영해 6000호주달러의 수입이 생겼는데 이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참석자들은 30여분간 논의한 끝에 학교 시설물을 고치는데 쓰기로 결정했다.

▼뉴질랜드 타마티아고교 로스코 교장▼

“뉴질랜드의 학교운영위원회는 다른 나라에 비해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어요. 교장은 일종의 ‘전문 경영인’과 같습니다. 학운위와 교장이 상하관계이기는 하지만 서로 존중하기 때문에 큰 갈등없이 원만하게 운영됩니다.”

뉴질랜드 네피어시 타마티아 고교의 리차드 로스코 교장은 “학운위와 교장이 서로 삐걱거리지 않느냐”는 질문에 학운위는 학교운영 전반에 대한 책임을 지고 교장은 경영과 집행업무를 맡도록 권한과 기능이 분리돼 있다고 설명했다.

대부분 국가의 학운위는 학교의 보조기구인데 비해 뉴질랜드는 학운위가 사실상 모든 책임을 진다.

로스코 교장은 “매월 한차례 열리는 학운위 회의에서 교육과정, 예산집행, 교사채용 등 모든 학교 경영 문제를 논의해 결정한다”면서 “이 때 교장은 학운위에 경영상황과 학업성취도 등 상세한 자료를 보고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학교 경영을 소홀히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학운위는 ‘친목단체’가 아니라 실제로 학교를 움직이는 ‘집행부’이고 학부모 학생 교사에 의해 선거로 선출됐기 때문에 위원들의 책임도 그만큼 크다. 학부모 대표 중에는 변호사 회계사 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가 많아 전문성을 살려 학교운영에 관한 결정을 한다.

“학부모 뿐 아니라 교직원 학생들도 자신들이 학운위에 상정하고 싶은 안건을 대표를 통해 제안하면 된다. 그래서 학운위 대표와 학교 구성원들이 항상 학교 문제에 관심을 갖는다. 이같은 시스템은 토론과 대화를 통해 의사 결정을 하는 민주시민 교육에도 효과가 있다.”

일부 학교에서는 학운위원 가운데 정치적인 문제를 끌어들이거나 종교 계통 학교에서 종교 문제로 갈등이 있기도 하지만 이같은 사례는 매우 드물다.

또 10년 이상 학운위를 운영하면서 제도 내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를 갖게 됐다는 것.

로스코 교장은 “학운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교육부에서 관선이사를 파견하거나 심지어 학운위를 해산하기도 한다”며 “이같은 학운위를 통해 뉴질랜드 교육의 질이 한단계 높아졌다”고 말했다.

▼호주 하코트초등교 학부모협의회 슈와이거 부회장▼

“사실 전에는 학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몰랐지만 학부모협의회 활동을 하면서 학교를 이해하게 됐어요. 학부모는 학교와 자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야 하고 당연히 알 권리가 있습니다.”

호주 시드니 하코트초등학교 학부모협의회(P&C) 부회장 잉그리드 슈와이거(여)는학부모의 학교참여를 강조했다.

5학년 아들과 2학년 딸의 학부모인 슈와이거 부회장은 6년간의 학부모협의회 활동을 통해 학부모들이 학교운영에 어떻게 참여하고 학교에 대한 학부모의 건의사항이나 불만을 슬기롭게 처리하는 노하우를 나름대로 터득했다.

“P&C 간부라고 하면 많은 학부모들이 이런 저런 불만을 털어놓고 해결해 달라고 합니다.나는 ‘일단 P&C에 나와서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조언합니다.”

실제로 한 학부모가 “교내의 나뭇가지가 너무 길어 통행이 어렵다”고 불평했다.

그래서 이 학부모를 설득해 P&C에 가입시키고 회의 안건으로 올렸다. 논의 끝에 단순히 가지를 치는데 그치지 않고 매점운영 수익금으로 조경작업을 벌여교정을 아름답게 바꿨다.

학부모만 P&C에 가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졸업생 학부모나 지역 주민 등도 참여하길 원하면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다.

회원은 학교에 등록하고 회비를 내야 한다. P&C협회 규정은 연간 50센트 이상의 회비를 받도록 하고 있다. 하코트초등학교의 경우 1년에 1호주달러의 회비를 받는다. 학교의 수입을 늘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학부모의 책임을 강조하기 위한 상징적인 의미에서 회비를 받는 것이다.

P&C는 회원들이 당번을 정해 매점을 직접 운영하고 여기서 나오는 수익금과 각종 기금모금 행사를 마련해 학교운영에 필요한 경비로 활용하고 있다.

그는 “학교는 교사만이 아니라 교사 학부모 학생이 함께 꾸려가야 한다”며 “자녀가 다니는 학교의 일에 직접 참여해본 학부모들은 학교에 더 애정을 갖게 되는 등 학교와 지역사회의 유대관계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inchu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