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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송영언/아이작 스턴

입력 | 2001-09-24 18:31:00


이번에 테러를 당한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가 미국경제의 상징이었다면 그곳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카네기홀은 미국문화의 상징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뉴욕 한복판에 있는 110년 역사의 이 유서 깊은 공연장은 시설규모나 권위, 연주자 수준 등 모든 면에서 세계 최고의 문화공간이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세계 각국의 음악가들은 이곳에서 연주를 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가슴 뿌듯한 자부심을 느낀다.

▷카네기홀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두 사람이 큰 역할을 했다. 한 사람은 부(富)를 사회에 환원한다는 뜻에서 1891년 이 공연장을 만든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이고, 또 한 사람은 1960년 헐릴 위기에 처한 카네기홀을 살려낸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 스턴이다. 당시 그는 카네기홀이 팔려 재개발에 들어가자 공연장 보존 운동에 발벗고 나섰다. 홀을 되사는 데 필요한 기금모금운동을 벌였고 전세계 음악인들에게 동참을 호소하는 편지를 보냈다. 불도저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결국 뉴욕시가 이를 사들였고 아이작 스턴은 40년 넘게 카네기홀의 회장을 맡아 예술 발전에 기여했다.

▷아이작 스턴의 부음(訃音)을 접하면서 그의 치열한 예술혼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생전에 그는 “문화공간은 사고 파는 부동산이 아니라 예술가들의 영감이 숨쉬는 문화유산”이라고 말하곤 했다. 8세 때 바이올린을 시작한 그는 80회 생일을 맞은 지난해까지도 활발한 연주활동을 폈으며 지금까지 모두 100장이 넘는 음반을 냈다. 연주가 있을 때마다 연습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얼마 전에는 뉴욕시의 교육감들을 모아놓고 직접 바이올린 교습을 하기도 했다.

▷음악 인재를 키우는 그의 열정은 미국은 물론 이스라엘 중국 일본 등에까지 폭넓게 미쳤다. 유대계인 그는 특히 이츠하크 펄먼, 핑커스 주커만 등 수많은 유대인 영재들을 미국에 데려와 교육하고 성공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거장(巨匠)은 떠났지만 이제 그들이 스승의 예술열정을 이어받을 것이다. 죽음 직전 뉴욕 폭격을 본 아이작 스턴은 문화예술에는 국경도, 인종갈등도, 전쟁도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young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