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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일본 미야자키 감독 '꿈으로 이끄는 배달부’

입력 | 2001-07-13 11:33:00


'도나리노 토토로 토토로 토토로….’ ‘재패니메이션’(일본 애니메이션, 아니메) 마니아치고 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굳이 부연설명하기가 망설여지는 ‘재패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감독의 ‘이웃의 토토로’(となりのトトロ) 주제곡이다.

‘누군가가 살며시 오솔길에 나무 열매 심어서/ 조그만 싹 자랐다면 비밀의 암호 숲으로의 패스포트/ 멋진 모험이 시작될 거야/ 토토로 토토로 토토로 토토로/ 숲속에서 옛날부터 살고 있는/ 이웃의 토토로 토토로 토토로/ 어린 시절에만 당신을 방문하는 신비한 만남….’

이 땅에서 오랫동안 애니메이션은 ‘어린 시절에만 방문하는 신비한 만남’이었다. 현실에 적응하는 머리가 조금씩 커지면서(굳어지면서) ‘만화적 상상의 세계’는 곧잘 유치함으로 포장되기 일쑤였다. 마찬가지로 ‘이웃의 토토로’의 토토로는 어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착하고 순박한 아이들에게만 발견된다. 그러나 토토로들은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준다. 마치 애니메이션과 같이.

어린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어릴 적 꿈과 추억을 떠올리게 하면서 일본인에게 ‘고향의 의미’를 새삼 일깨워 준 ‘이웃의 토토로’가 오는 28일 개봉한다. 제작 13년 만에 한국에서 개봉하는 셈. ‘이웃의 토토로’는 과연 일본에서의 개봉 때처럼 우리 나라에서도 흥행에 성공할 수 있을까. 전망은 비관 쪽으로 기우는 경우가 많다.

첫째로 이미 웬만한 사람은 봤다는 이유 때문이다. 제작과 한국에서의 개봉이 13년이나 차이가 나다 보니 재패니메이션 마니아들은 해적판 비디오나 CD로 이미 다 섭렵한 것. ‘포켓몬스터’ ‘인랑’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무사 쥬베이’ 등 이미 개봉한 재패니메이션이 그 명성이 있음에도 모두 흥행에 실패했다는 사실도 비관적 전망을 한몫 거든다.

▼‘이웃의 토토로’ 28일 개봉▼

물론 ‘이웃의 토토로’는 먼저 개봉한 영화들과 매우 다르다. ‘인랑’이나 ‘무사 쥬베이’처럼 폭력적이거나 잔혹한 장면도 없고,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한 SF물도 아니다. 빈곤하기 짝이 없는 50년대 전쟁 직후의 시대를 배경으로 도시에서 시골로 이사온 사츠키와 메이 자매가 토토로들을 만나고 서로 더불어 살아가는 ‘잔잔한 이야기’다. 이 작품에 대해 공동판권을 갖는 ‘대원C&A홀딩스’와 ‘일신픽처스’측에서는 “일부 개봉작에서 흥행 실패요인으로 지적한 폭력성이나 난해함이 전혀 없는 가족용 영화이므로 선전을 기대한다”는 희망을 표시한다.

그러나 우리 애니메이션계가 정작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이 작품이 흥행에 성공하느냐 마느냐가 아닌 듯하다. 일본에서의 ‘이웃의 토토로’는 지금까지 애니메이션에 눈길을 돌리지 않던 어른들까지 만화영화에 관심을 갖게끔 만드는 전환점을 만들었다.

‘토토로’를 계기로 일본의 성인들은 우주 공간이 등장하는 미래 시점도 아니고 로봇이 등장하지도 않는 자신들의 고향과 어린시절의 이야기가 이처럼 아름답게 감동을 줄 수도 있다는 애니메이션의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한 것이다. 이같은 ‘토토로의 정서’는 바로 다음해에 개봉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또 다른 작품 ‘마녀소녀 키키’(원제는 魔女の宅急便)에도 이어지면서 관객동원이 3배(264만 명)나 부쩍 뛰는 결과를 낳았다.

‘이웃의 토토로’에 대해 애니메이션 ‘반딧불의 무덤’ ‘추억은 방울방울’ ‘헤이세이 너구리 대전쟁 폼포코’로 유명한 감독 타카하타 이사오(高畑勳)는 이렇게 말한다. “토토로는 미야자키 하야가 베푼 최대의 은혜라 생각한다. 토토로는 전국에 있는 아이들 마음속에 살고 있으며 아이들은 숲을 보고 토토로가 숨어 있는 것을 느낀다.” 타카하타 이사오는 TV용 애니메이션인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엄마 찾아 삼만리’ ‘빨강머리 앤’의 연출자기도 하다. 지금쯤 아이 둘 정도를 가진 연배의 아줌마들이 소녀시절 넋을 놓고 본 바로 그 만화영화들이다.

미야자키의 애니메이션은 사람에게 잃어버린 동심의 세계, 즉 고향을 되찾아 주었다는 의미를 지닌다. 가장 최근인 97년에 개봉해 70일 동안 무려 1200만 명을 동원한 ‘원령공주’(원제는 もののけ姬)도 마찬가지다. ‘원령공주’는 제작비 20억 엔, 구상기간 16년, 제작기간 3년, 작화 장수 14만4000장 등 재패니메이션 역사상 여러 부문의 신기록도 놀랍지만, 그보다 더 눈여겨볼 것은 무로마치(室町) 바쿠후(幕府) 시대의 탁월한 재현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의상과 소품·풍경·가옥·인물 묘사 등은 마치 그 시대로 시공을 뛰어넘어 간 듯 너무나 생생하고 정교하다. 캐릭터 자체가 일본적 정서를 대변한다. 말하자면 ‘가장 일본적인 것의 세계화’라고나 할까.

‘이웃의 토토로’와 ‘마녀소녀 키키’에 자주 등장하는 고양이도 일본인에게는 가장 친숙한 애완동물이다. ‘마녀소녀~’의 고양이는 키키와 말을 나누면서 기숙사 사감 같은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토토로’의 고양이는 마치 축지법을 사용하듯 토토로들을 실어나르는 숲속의 버스로 등장한다. 범국민적인 애정을 지닌 애완동물을 만화 속 캐릭터로 변형함으로써 애니메이션과 관객의 거리를 좁혀놓은 것.

이 때문에 ‘천녀유혼’으로 유명한 홍콩의 영화감독 서극은 이렇게 말한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의 작품 속에서 우리 모두를 생명 가득한 세계로 이끌어 생명의 정열을 전해준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영원한 생명을 전하고 사람에게 잊힌 그리고 잃어버린 무엇인가를 찾아내고 있다. 그가 만든 현실과는 먼 세계 속에서 우리들은 어느 사이에 이야기의 등장인물들과 함께 유랑하기 시작한다.” 이쯤 되면 미야자키 애니메이션의 경쟁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작품들이 한결같이 뚜렷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고, 이를 뭉클한 감동을 통해 관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잘 전달하는 것도 그의 경쟁력의 주요 원천이다.

▼뚜렷한 메시지 뭉클한 감동▼

지금쯤 30대 중반 이상이 된 장년층들은 유년기에 즐겨 본 ‘미래소년 코난’에서 핵전쟁의 무서움을 교육에 의하지 않은 최초의 경험으로,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이후 미야자키 작품 주인공들의 근간이 되는 캐릭터가 탄생한 ‘미래소년 코난’은 반핵, 환경보전, 반독재의 주제를 형상화했지만, 그런 메시지의 무거움이 만화를 보는 즐거움과 재미를 해치지는 않았다. WWF(세계야생생물기금) 추천을 받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생명보전과 환경보전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은 당연했다. 이후 미야자키 작품의 주제는 △천공의 성 라퓨타 : 반독재, 생명존중, 미지로의 도전 △이웃의 토토로 : 가족애, 고향 △마녀소녀 키키 : 자립, 책임의식 △붉은 돼지 : 반전 △원령공주 : 환경보전, 반이기주의, 반차별주의 등으로 나타났다.

이런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철학은 그와 공동작업을 많이 한 타카하타 이사오에게 더욱 심화한 형태로 나타난다. 타카하타는 요즘 청소년층 마니아들에게 인기가 높은 ‘아키라’나 ‘공각기동대’ 같은 SF 소재들은 이국인도 이해하고 공유하는 국제적인 언어지만, 다른 나라들도 그런 소재로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의 이런 지적은 최근 우리 애니메이션계의 작품 경향이 점차 일본 뉴에이지 애니메이터들의 세계를 닮아가고 있거나, 모방하는 현상에 대한 비판으로도 들린다. 예를 들어 ‘영혼기병 라젠카’ 같은 우리 애니메이션은 엄청난 돈을 들여 제작과 홍보에 힘을 쏟았지만, 국적 불명의 일본 뉴에이지 애니메이션의 아류라는 비판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타카하타는 대중이 좋아하는 ‘햄버거’를 만들기보다 좀더 일본적 특수성이 담긴 ‘스시’를 만들어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헤이세이 너구리전쟁 폼포코’만 해도 노인들까지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전통적 소재를 다루었기 때문에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 테크놀로지의 비약 단계에 접어든 우리 애니메이션 산업이 미야자키나 타카하타에게 벤치마킹해야 할 것은 그의 테크닉이라기보다 ‘일본적 독창성’의 상상력을 키운 바로 그 정신이라 할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왜 좋아하는가. 많은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행복해진다.” 사람은 행복하길 원한다. 애니메이션을 보는 이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행복한 작품’을 만들면 우리 나라의 성인들도 애니메이션에 대한 관심이 지금보다는 높아지지 않을까. 마치 ‘이웃의 토토로’가 그랬던 것처럼.

< 조용준 기자 > abrax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