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북한의 주된 협상기술은 ‘벼랑끝 전술(brinkmanship)’이었다. 상대방을 마지막까지 밀어붙여 성과를 얻어내는 방법이다. 1994년 10월 북-미(北-美)간에 체결된 제네바 기본합의도 따지고 보면 벼랑끝 전술의 ‘혁혁한 전과(戰果)’였다. 80년대 말부터 사회주의권이 붕괴하는 등 그 불안하던 와중에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무기로 협박한 끝에 체제보장과 경수로 지원 등을 얻어냈다.
▷강대국과 약소국이 협상하면 대개의 경우 강대국이 유리하다. 협상 카드가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대국은 카드를 하나씩 바꾸는 협상 전략을 구사한다. 반면 약소국은 대체로 양측이 가진 카드를 한꺼번에 맞교환하기를 원한다. 지금까지 미국과 북한이 대화해온 양상도 꼭 그런 식이었다. 미국엔 테러지원국, 경제제재 등 북한 체제의 사활을 결정지을 카드가 많다. 이에 대해 핵과 미사일 카드밖에 없는 북한으로선 궁여지책으로 1999년 금창리 지하핵시설 의혹 건처럼 기존 카드를 쪼개 새 카드를 만들어내는 ‘기술’을 선보이기도 했다.
▷미국과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마주앉은 지도 이제 10년이 되어 간다. 처음엔 상대방의 협상 행태를 이해하지 못해 우왕좌왕했다고 하지만 이제는 서로 알만큼 알게 된 처지다. 일례로 미국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자기네가 통제할 수 있는 구역에서 북한과 마주앉을 경우 회담장에 모니터를 설치해놓고 국무부와 국방부 등 관계 부서에 현장 중계를 해왔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측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은 북한에 대해 우리보다 훨씬 많이 알고 있다”고 단언하기도 한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들어와 처음으로 뉴욕에서 북-미가 마주앉았다. 앞으로 전개될 본격 대화의 전초전 격인 만남이다. 그러나 미국은 일찌감치 북-미 대화의 전제 조건으로 ‘검증 절차의 강화’를 내놓고 있다. 합의 내용을 검증할 수 없다면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말과 마찬가지다. 이제 서로가 알만큼 알았으니 벼랑끝 전술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경고처럼 들리기도 한다. 북한이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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