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 가능성 역사학서 찾는다
한국 시민사회의 현 좌표를 역사학의 관점에서 짚어보는 자리가 마련된다. 25, 26일 오전 9시30분 건국대에서 열리는 제44회 전국역사학대회’(주최 역사학회)는 ‘역사에서의 공공성과 국가’라는 주제로 역사 속에 나타난 시민사회 움직임을 집중 논의한다.
최근 학계에는 ‘혈연 지연 학연으로 겹겹이 얽혀 있는 한국 사회가 과연 시민사회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인가’가 중요한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이번 행사는 이같은 시점에서 한국 ‘시민사회’의 가능성을 역사학에서 검토하는 자리로 눈길을 모은다.
▽끊임없는 토론으로 代案 도출
사회학자로 이번 대회에 초청된 서울대 송호근 교수는 미리 발표한 논문 ‘공공영역의 사회이론적 의미와 역사학적 응용’에서 이른바 ‘공공영역’에 대해 사회학적 정의를 내린다.
하버마스의 이론적 출발점인 ‘공공영역’이란 개인들이 서로 끝없이 토론하는 가운데 합리적인 대안을 이끌어내는 장(場)을 의미한다. 이는 동양 역사에 나오는 ‘공론(公論)’과 비슷한 말로 ‘공공영역’에서 도출된 결과물이자 일종의 여론과 같은 것.
서울대 서양사학과 최갑수 교수는 ‘서양에서 공공성과 공공영역’이라는 주제로 유럽에서 시민사회가 태동하게 된 배경을 ‘공공영역’의 형성을 중심으로 분석한다.
최교수에 따르면 근대 초까지도 유럽은 동아시아와 비교해 강력한 중앙집권적 정치제체를 이룩하지 못했다. 최 교수는 이런 상대적 후진성 덕분에 ‘공론’이 중앙 권력자의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봉건영주, 부르주아, 나아가 시민들에게 확산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정치적인 미성숙으로 인해 중세 유럽은 수 천개의 정치적 단위들로 나누어졌고 이 정치적 단위들간의 경쟁이 자본과 인간, 사상을 발달시켜 결과적으로 시민사회의 도래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강한 정부'아래선 '公論'제한
가톨릭대 인문학부 박광용 교수(국사학)는 조선후기 붕당정치와 탕평정치 사례를 통해 우리나라가 유럽과 달리 시민사회로의 전환에 실패한 까닭을 파헤친다.
강력한 중앙집권제에서 시작된 조선시대 초 ‘공론’의 주체는 왕과 일부 재상에만 국한돼 있었다. 그러나 16세기 붕당정치가 시작되면서 ‘공론’의 논의는 당시 정치 주도세력이던 사림(士林)에게 확산된다.
‘위로부터의 공론’이 아닌 ‘아래로부터의 공론’을 뜻하는 ‘공론재하론(公論在下論)’이 형성되는 것도 이 시기.
‘공론’은 사림의 생활공동체인 향촌사회로까지 자연스럽게 확장되고, 18세기 ‘탕평정치’의 시작으로 중간계층 및 일반 서민에게까지 확대된다.
▽"民亂은 의견표명 막힌 탓"
그러나 정조 사망 후 권력이 다시 군주의 외척 세도가에 집중되면서 ‘공론’은 중앙집권층의 소관으로 회귀한다. 우리나라가 시민사회로 발전하지 못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합법적인 방법을 통한 ‘공론’ 도출의 길을 잃은 일반 서민들이 폭력적인 방법으로 불만을 표명하기 시작해 각종 민란이 발발하기에 이르렀다는 주장이다.
이번 대회는 역사학이 현실 참여적 접근을 꾀한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서강대 사학과 임상우 교수는 “역사학의 기본원칙은 과거에 대한 성찰을 통해 현재를 가늠하는 것”이라며 “이번 발표가 역사 속에 나타난 ‘공공영역’을 되짚어 봄으로써 한국 시민사회의 현 주소를 파악하고 향후 발전가능성을 논의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sk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