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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마당]문권배/계열교차 허용이 기초학문 망쳐

입력 | 2001-05-02 18:51:00


신문보다 TV를, 수학책보다 소설을, 소설보다 영화를 선호하는 사회 풍조가 인문학을 고사시키고 있다. 필자는 수학자로서 이런 현상에 대해 아픈 기억과 나름대로의 관점을 갖고 있다. 몇 해 전 수리정보가 주체인 기초학문은 어렵고 쓸모 없다는 이유로 쑥대밭이 됐다. 기초학문의 붕괴는 인식력을 약화시켜 이제 인문학마저 수모를 당하고 있으며, 자칫 껍데기만을 좇는 사회로 악화될 조짐이 있다.

기초학문은 수리, 인문학은 언어, 실용학문은 영상정보가 각각 주된 학문적 도구이다. 각각의 정보의 특성을 학생부를 예로 들어 살펴보자. 키 체중 성적 등 서열화가 가능한 것은 숫자로, 인품 성격 봉사활동 등 종합적인 측면은 언어로, 학생의 외형은 사진으로 대신한다. 사진을 통해 학생들을 쉽게 구별할 수 있지만 사람의 됨됨이까지 알 수는 없기 때문에 언어와 수리 정보를 참고해야 한다. 또 학생의 종합적 측면은 언어로 대충 표현할 수 있지만 특히 순서를 정할 때는 수리정보를 이용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이 인문학에 속하고 그 심층 연구에는 기초학문이 절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다.

올해 발표된 대학입시의 특징은 다양함과 복잡함이다. 취약점은 다양함 속에 가려져 있는 무원칙, 불공정과 팔방미인을 요구하는 까다로운 전형방법이다. 종합적 측면을 단편적 관점으로 평가하거나, 지원자격에 교차지원을 허용하면 불공정한 전형이 된다. 이러한 불공정성 시비를 막으려다 보니 전형방법이 너무 복잡해졌다. 내신, 수능, 논술, 면접, 구술시험으로 이어지는 다단계 전형은 학생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 한편에서는 원칙 없는 불공정함에 억울해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예전보다 더 까다로운 전형방법에 숨이 막힌다. 학생과 학부모가 우왕좌왕하면서 교실은 붕괴되고 사교육비는 오히려 증가했다.

교육정책에 왕도는 없지만 우선적으로 감안해야 할 것들은 있다. 자원 빈국인 한국은 인재 양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경쟁에는 원칙과 공정성이 있어야 한다. 또 국가경쟁력은 상황 판단력과 창의성이 핵심이고, 이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선진국처럼 근본을 파고드는 기초학문의 중요성을 인식해 배려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수학능력시험의 언어, 외국어 영역은 인문, 자연, 예체능계열이 언제부터인가 같아졌고, 수리영역은 출제범위가 하늘과 땅 차이다. 더구나 계열 교차지원을 허용해 학생들이 기초학문을 멀리하게 만들었다. 중요해진 논술, 구술시험도 수리보다는 언어영역에 더 관계된다. 언어정보보다 강력한 도구인 수리정보에 대한 인식과 배려가 아쉽다.

백년대계인 교육정책 수립에는 기초학문 마인드가 필요하다. 평가대상과 지원자격, 전형방법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선택해야 한다. 이는 상황 판단력과 예측력에 관계되는 능력으로 기초학문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사진과 언어만 가지고 학생의 모든 측면을 제대로 알 수는 없지 않은가.

문권배(상명대 교수·수학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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