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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마당]최연홍/‘제왕적 대통령’지적 이유있다

입력 | 2001-04-04 17:59:00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미국 워싱턴포스트와의 회견이 청와대 대변인의 비난의 대상이 됐다. ‘제왕군주적’(Imperial Presidency)이란 용어가 우리말로는 지나치게 들릴지 모르지만 미국의 공화당 민주당 의원들은 빌 클린턴 전대통령이나 리처드 닉슨 전대통령을 자주 제왕군주적인 대통령이라고 비판했다. 학자들도 제왕군주적 대통령을 비판한다. 이런 표현은 비일비재한 편이다. 미국인은 이를 지나친 비난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국회의장을 임명한다면 그 대통령을 제왕군주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마땅하다. 미국 대통령들은 국회의장을 임명할 수 없는데도 제왕군주적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한국에는 막강한 대통령을 견제할만한 국회가 없음을 인정한다면 상대적으로 대통령은 전제군주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청와대 대변인은 김대중 대통령이 정말 제왕군주적이라면 야당이 존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것은 언어도단이다. 우리가 어디 왕조시대에 살고 있는가.

한국 정부나 지성인들은 외국 언론에 한국 정부를 비난한 사람들을 비난한다. 김 대통령은 야당 정치인 시절에 외국언론과 많은 기자회견을 했고 한국의 권위주의 정부를 비난한 적이 있다. 그 때 정부와 보수적인 인사들은 김 대통령을 비난했다. 나는 그런 정부와 인사들이 비민주적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다.

국내 언론과 외국 언론을 차별화할 필요가 있는가? 국내 언론의 보도가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가 지구촌에 살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시대착오적인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김대중씨가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나는 민주주의의 큰 획을 그을 분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준비된 대통령이며 국민의 정부라는 현 정부는 총체적 국가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DJP 연합은 정권 유지가 목적이지 국리민복을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 총재와 야당 때문에 정부가 국리민복을 성취할 수 없었는지 묻고 싶다. 이 총재가 김 대통령에게 존경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고 청와대는 비난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야당 총재가 대통령에게 무조건 존경을 표시한다면 그 나라 민주주의의 질도 저급한 것이 되지 않겠는가. 존경을 토대로 하는 권위는 아름답지만 권위를 토대로 하는 존경은 아름답지 못하다.

누군가가 우리나라는 아직도 제왕군주적 대통령제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나는 굳이 그 말을 거부하고 싶지 않다.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에는 언론의 자유가 없다고 보지 않는다. 다만 언론이 대통령직에 대한 지나친 조심스러움과 예의를 보이기 때문에 서구적 언론의 자유가 없다고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통령직이 제왕적으로 유지되고 지속되고 있다. 대통령 개인의 성품보다 대통령직의 권위가 제왕군주적이다.

청와대가 야당 총재의 외국언론 회견 내용을 비난한다면 아직도 정부와 언론의 관계, 그리고 정부와 야당의 관계가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의 그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최연홍(서울시립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