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조사는 한국과 미국에서 한미정상회담이 끝난 뒤인 16일부터 23일까지 8일 동안 동시에 실시됐다. 한국에서는 교수, 5급 이상 정부 공무원, 대기업 간부 등 104명을 방문조사했고 미국에서는 연방정부 고위 공무원, 대기업 간부, 언론인, 교수 및 연구소 연구원 등 101명을 전화면접 방식으로 조사했다. 한국에서는 리서치 앤 리서치(R&R)가, 미국에서는 족비(Zogby) 인터내셔널이 각각 조사를 맡았다. 족비 인터내셔널은 미국 뉴욕주 유티카에 있는 조사전문회사로 지난 해 실시된 미국 대선 당시 조지 W 부시와 앨 고어 후보의 득표율을 가장 정확하게 예측해 조사능력을 인정받았다. 족비 인터내셔널은 미국 내에서 높은 정확성과 공정성으로 공신력이 있으며 유수 기업들을 위한 마케팅조사도 실시하고 있다.》
▼한미의 대북정책…"한국 포용정책이 北 변화시키고 있다"▼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미국의 여론 선도층 인사들은 10명 중 8명(80.2%)꼴로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났다. 이들은 부시 행정부가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협상을 이어가야 한다’고 응답했다. 또 미국 응답자의 69.3%는 한국정부의 대북 화해정책의 추진 속도에 대해 ‘적당한 속도’라고 평가했지만 현실적으로는 46.5%가 남북관계 진전속도가 다소 늦춰질 것으로 보았다.
양국 조사 대상자의 약 30%는 부시 행정부 출범으로 남북관계 관련 기본 정책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고 응답해 부시 행정부의 정책이 남북관계 정책방향의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도 적지 않은 편이었다.
한국의 조사대상자 가운데 76.9%는 미국 응답자들과 마찬가지로 부시 행정부가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협상을 이어가야 한다고 응답했다. 한국 응답자들 중에는 51.9%가 한국 정부의 대북 화해정책 추진 속도가 ‘적당하다’고 응답했지만 42.3%는 ‘너무 빨리 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 응답자 중에서는 63.4%가 대북 포용정책에 대해 북한의 태도를 실질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고 응답했고 53.5%는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줄었다고 응답했다. 북한당국이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서도 신뢰할 수 있다는 응답이 46.5%였다. 그러나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감소하지 않았다는 응답도 40.6%나 됐고 북한당국이나 김위원장을 신뢰할 수 없다는 응답도 43.6%나 돼 북한에 대한 미국 여론 선도층의 우려가 여전히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반도 통일과 관련해 미국의 여론 선도층 인사들 가운데 75.2%가 미국의 국익에 긍정적 영향을 더 많이 줄 것으로 예상했다. 또 미국 응답자들은 남북한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독립된 국가로 남는 것(19.8%)보다 통일이 점진적으로(59.4%) 또는 가능한 한 빨리(13.9%) 이뤄져야 한다고 응답했다. 한국의 조사 대상자들은 56.7%가 통일이 미국에 좋지 않은 영향을 더 많이 줄 것이라고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한미관계 변화정도…한미정상회담 평가 엇갈려▼
한국과 미국의 조사 대상자들은 3명 중 2명꼴로 조지 W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한미관계에 대해 ‘좋다’고 평가했다. 현재의 한미관계에 대해 ‘좋다’는 응답은 한국 응답자의 66.3%, 미국 응답자의 68.3%였다. 또 향후 5년 동안의 한미관계에 대해서는 양국 모두 10명 중 8명꼴로 별 변화가 없거나(한국 71.2%, 미국 49.5%) 더 좋아질 것(한국 10.6%, 미국 31.7%)이라고 예상했다.
한미관계의 가장 중요한 현안으로는 양국 응답자 모두 대북관계 및 대북정책 관련 내용을 가장 많이 꼽았고(한국 74%, 미국 63.5%) 다음으로는 통상 및 경제문제(한국 15.4%, 미국 7%)라고 응답했다.
주한미군에 대해 한국 응답자의 48.1%, 미국 응답자의 54.5%가 현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고 응답했고 감축해야 한다는 응답(한국 45.2%, 미국 32.7%)도 많았지만 완전히 철수해야 한다는 응답은 한국 6.7%, 미국 3.0%에 불과했다.
통일 후의 한미안보동맹 관계에 대한 질문에는 한국 응답자의 82.7%가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었으나 미국 응답자들은 필요하지 않다(45.5%)와 유지해야 한다(41.6%)로 의견이 갈렸다.
7일 열린 한미정상회담에 대한 양국 응답자들의 평가는 서로 달랐다. 한국 응답자의 71.1%가 성과가 없었다고 평가했지만 미국 응답자의 53.5%는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한국 응답자들은 대북정책에 대한 이견과 견해차만 확인했을 뿐 부시 행정부의 상황인식을 바꿔놓지 못했다는 점을 그 이유로 꼽았다. 그러나 미국 응답자들은 만남과 대화 자체, 그리고 상호문제를 논의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응답해 차이를 보였다. 이는 한미정상회담에 대한 기대 수준 자체가 달랐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경제에 대한 시각▼
한국시장의 투자가치에 대해 미국의 조사 대상자 가운데 68.3%가 미국기업으로서는 한국이 투자할 만한 매력이 있는 시장이라고 응답했다. 이들은 값싼 노동력 및 숙련된 노동자가 많다는 점(32.7%)과 중국 등 아시아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21.8%)을 한국시장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았다.
미국 기업이 한국에 진출하는 데 어려운 점으로 미국 응답자들은 정치 사회적 불안(28.7%)과 경제불안(18.8%) 북한의 존재(10.9%) 등을 꼽았으나 한국 응답자들은 규제(17.3%)와 노사문제(10.6%) 등을 지적했다. 일단 한국에 진출해 보면 보다 구체적인 요인들이 장애요인으로 보이겠지만 한국에 진출하기 이전에 밖에서 바라볼 때는 사회 전체의 불안요인이 더 큰 문제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로 풀이된다.
한국경제에 대해 한국 응답자들은 48.1%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성공적으로 극복하지 못하고 아직 문제가 많다고 보았고, 25%는 한국경제가 여전히 위기라고 응답했다. IMF 사태를 극복해가고 있다는 응답은 26.9%에 그쳤다.
1년 후의 한국경제에 대해서는 한국 응답자들의 45.2%가 좋아질 것으로 보았으나 34.6%는 비슷할 것으로, 20.2%는 나빠질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응답자들 중에는 아직 문제가 많다(35.6%)거나 여전히 위기(8.9%)라고 보는 사람이 많았고 31.7%만 한국경제가 IMF 사태를 극복했다고 평가했다. 미국 응답자들은 1년 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좋아질 것 32.7%, 비슷할 것 24.8%, 나빠질 것 28.7%로 전망했다.
sunny60@donga.com
▼족비회장의 분석▼
미국의 여론 선도층을 상대로 한 이번 여론조사는 조사 시점이 한미정상회담 직후여서 남북한 문제에 관한 현안들을 분석하고 정책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의적절했고 한국은 물론 미국에도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현재 진행중인 남북의 화해 무드가 미국의 국익에 긍정적이고 따라서 한미 공조체제 유지가 필수적이라는 데 여론 선도층의 견해가 일치하고 있다. 한반도 긴장 완화는 궁극적으로 미국의 한반도 군사비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응답자의 75%가 한반도 통일을 지지했다.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전임 행정부의 적극적인 햇볕정책 지지와는 다른 강경책으로 변할 것을 예견하면서도 이것이 근본적인 변화보다는 통일을 위해 선행돼야 할 군축, 미사일, 핵 문제들을 좀 더 명쾌하게 해결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전환기적 변화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부시 행정부와 여론 선도층 사이에 대북정책에 대한 견해차가 크다는 점도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조사결과는 대북한 대화 및 포용정책을 지속해야 하지만 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에 관해서는 감시와 검증이 가능해질 때까지 북한과의 대화를 중단한다는 부시 정부의 정책에 여론 선도층이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올해 단기적인 남북관계와 미국의 역할에 대한 예측을 가능케 해주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이 제1의 국방, 외교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는 국가미사일방어(NMD) 체제는 여론 선도층과 북한에 관한 견해차를 더욱 벌어지게 해 부시의 정책 선택의 폭을 상당히 제한할 가능성이 있다. 미사일 계획을 추진하려면 북한을 오래 방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경제 분야 조사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한국시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로 아시아로 진출하는 발판으로써 한국경제가 갖고 있는 기술적 우위, 타국의 대(對)한국 친밀감, 정보통신 시장의 역동성 등을 꼽았다는 점이다.
(족비인터내셔널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