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의 통화량 관리가 50여년만에 사실상 중단됐다. 대신 콜금리 등 단기금리 조절을 통해 물가를 관리하게 된다. 이는 앞으로 금융구조조정으로 인해 금융 경색이 심화될 경우 부담없이 돈을 풀겠다는 의지로 해석되고 있다.
▽통화량 대신 금리 조절로 물가 관리〓한은은 올해 통화신용정책의 운용 목표를 콜금리로 결정했다고 14일 밝혔다. 그동안 ‘중간 목표’로 관리하던 총유동성은 ‘감시 지표’로만 활용키로 했다.
‘감시 지표’란 감시 범위를 벗어날 경우 곧바로 정책적으로 대응하는 ‘중간 목표’와 단지 참고만 하는 ‘정보 변수’의 중간 정도에 해당하는 것. 감시 목표를 정해 놓기는 하되 이를 근거로 즉각적인 정책을 펴지는 않게 된다.
전철환(全哲煥)한은총재는 “금융 환경이 급변하면서 통화지표의 유용성이 떨어져 통화 증가율 목표를 감시 지표로만 활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은 강형문(姜亨文)부총재보도 “통화량을 중간 목표로 삼지 않게 되면서 우리나라는 순수한 물가안정목표제(인플레이션 타게팅)체제로 들어갔다”며 “단기금리를 조절해 물가를 직접 관리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금융 경색에 대비해 돈 풀겠다는 뜻, 물가 불안해질 우려〓작년 8월까지 총통화는 전년 동기보다 무려 34.9%나 늘어났지만 총유동성은 5.3% 증가하는데 그쳤다. 엄청나게 풀린 돈이 우량은행 등에 머무르며 안전한 국고채와 A급 회사채로 몰려 국고채 수익률은 연5.95%, AA+급 회사채 수익률은 7.77%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업들이 자금난을 겪는 등 금융시스템은 여전히 불안한 실정. 이런 상황에서 통화량을 관리한다고 하는 것보다는 통화관리목표를 금리로 바꾸고 돈은 충분히 공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전총재도 11일 “환율과 물가 불안 등을 감안해 콜금리를 인하하지 않았지만 유동성은 충분히 공급하겠다”고 밝혔다.문제는 물가. 원재료 가격이 지난해 22.7%나 오른데다 12월부터 환율도 급등세를 보이고 있어 물가 상승이 우려되고 있다. 의료보험료 등 공공요금 인상도 대기하고 있다. 한은은 올해 물가안정 목표를 3±1%로 잡고 있다. 그러나 1·4분기에 4%가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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