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각 나라의 정보통신 기반시설(인프라)의 수준을 비교하는 자료들이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인프라가 선진국에 비해 상당히 앞서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자료의 내용이 조금씩 달라 눈으로 직접 보기 전에 정확한 실상을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다.
필자는 잦은 해외출장 경험을 통해 어떤 나라의 정보통신 인프라 수준을 가늠하는 손쉬운 방법을 하나 찾아냈다. 굳이 이곳 저곳 바쁘게 돌아다니지 않고 한 장소에서 정보통신 인프라 수준을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다. 그 장소란 공항이다.
공항은 외국인에게는 그 나라를 접하는 첫번째 관문이고 내국인에게는 외국으로 나가는 마지막 관문이다. 이 때문에 공항에는 그 나라의 가장 핵심적인 이슈나 국가적 주요 이벤트에 관한 정보들이 알게 모르게 많이 나붙어 있다.
예를 들면 중국 베이징(北京)공항의 내부는 2008년 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한 다양한 정보로 뒤덮여 있다.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 근교의 공항에서 도심으로 들어가는 길 양편에는 말레이시아 정보통신의 핵인 멀티미디어 슈퍼코리도(MSC)에 관한 정보를 쉽게 볼 수 있다. 미국 덴버공항에서는 새너제이의 실리콘밸리에 버금가는 벤처육성지역 덴버―볼더코리도에 관한 자랑을 많이 볼 수 있다. 이 밖에도 미국의 몇몇 대형 공항에서는 비즈니스를 위해 출장을 떠나는 고객의 목적지에 따라 그 지역의 산업특성을 알리는 맞춤형 광고를 내보내는 경우도 있다.
요즘은 주요 공항마다 인터넷 라운지를 갖추고 있다. 필자는 필요가 있든, 없든 인터넷 라운지를 이용해 본다. 앞서 밝힌 대로 정보통신 인프라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최근 일본과 중국, 싱가포르에 출장을 다녀오면서 아시아 주요국가들의 인프라를 한꺼번에 비교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베이징공항은 아직 일반전화(Dial―up)로 인터넷에 접속하는 환경이다. 네트워크의 속도가 늦을 뿐만 아니라 동영상과 같은 멀티미디어 콘텐츠는 이용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고 있지만 정보통신 인프라는 아직 미흡한 셈이다.
우리나라 김포공항의 인터넷 접속환경은 디지털가입자회선(XDSL) 방식의 초고속인터넷망이 연결돼 있다. 사무실에서 인터넷을 쓸 때와 다름없이 고속으로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다. 흔히 우리나라가 유선(有線)인터넷은 일본을 앞서간다고 하는데 이런 사실은 공항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의 공항에는 종합정보통신망(ISDN)이 깔려 있다. ISDN은 국내에서도 통신업체들이 일부 서비스를 하고 있지만 비대칭디지털가입자회선(ADSL)이 보급되면서 사실상 퇴물이 됐다. ISDN의 속도는 ADSL에 비해 크게 뒤진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싱가포르였다. 싱가포르 공항에서는 초고속인터넷망의 접속뿐만 아니라 개인정보단말기(PDA)를 고속의 무선 인터넷망에 접속할 수 있는 적외선 인터페이스가 설치돼 있었다. 무선인터넷 접속에서 우리를 앞서가고 있는 것이다.
요즘 경영난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나라 인터넷 기업들이 해외에 진출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그러나 아직 뚜렷한 성공사례가 많지 않다. 그 나라 수준과 특성에 맞는 인터넷 비즈니스 전략이 우리에게는 부족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강세호(유니텔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