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8월3일자 경향신문에는 대단히 흥미로운 기사 한편이 대서특필되고 있습니다. 신문 한면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초대형 기삽니다.
큰제목, 작은제목들도 얼마나 선정적인지 모르겠어요.
`못된 여자나 영화에 출연한다' `말의 파문' `우리는 과연 못되고 무식하나?' `미인의 입에 은 말한다' `미스 코리어도 마찬가지' `그런 미인도 과연 미인인지' `정말이면 나라망신시킨 말' `통역의 착오이길 믿고싶어' `한국적 부덕(婦德)의 잘못된 표현' `부디 착오이기를' `는 말도 성립돼 ' `자기 순결성 강조한다는게 그만' `일부 여우(女優)들에 따끔한 일침' `그런 소리 듣지 않게 각성을' `하다보니 그런 말 나올 수도' 등등.
제목 베끼는데도 고단하군요. 도대체 이 기사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기사를 읽어보니 그해 미스코리아 진에 당선된 숙명여대 3학년 김명자양(당시 20세)이 세계대회에 출전했는데, 외국에서 `무식하고 못된 여자나 영화에 출연한다'는 식으로 얘기했나 봅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국내 영화계, 연예계는 발칵 뒤집어진 모양이구요.
신문은 이 가십성 기사를 어머어마한 특종으로 생각했는지 각계인사들의 장황한 코멘트까지 받고 있습니다.
후일 우리 영화계의 거목이 되실 두 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영화감독 유현목)
(연출가 김정옥)
`교양 있으신 분'이 하신 말씀이니 옳은 말 아니겠느냐고 재담식으로 눙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코메디언 곽규석)
(배우 김향이)
여대생들은 김명자양을 지지합니다.
< 잘한 말이다. 우리나라 일부 여우들의 무질서한 생활태도에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 스캔들=여우라는 관념을 일반에게 심어준 죄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깨닫고 좀더 건전한 예술가적 도야가 있어야겠다. > (숙대생 황명숙)
< ......우선 나 자신도 좋은 의미로서의 배우가 되고싶은 생각은 많은데도 못하는 이유는 만약 배우가 되면 타락이나 하듯이 해석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실정이다. 그런 소리를 안듣기 위해서라도 영화배우들은 각성을 해야 할 것이다. > (이대생 김숙자)
재밌게 읽으셨습니까?
저는 이 컬럼을 연재하면서 종종 `옛날을 너무 오늘날의 시각으로만 바라보는게 아닌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유식하게 말해 이른바 `아나크로니즘의 오류'에 빠지는 것은 아닐까 반성해보곤 한다는 얘기지요. 그래서 오늘은 `미스 코리어 김명자양과 각계인사들'의 멘트에 대해 언급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 얼마전의 최진실-조성민 커플의 결혼식을 리뷰해보기로 하지요. 그 이벤트는 여러모로 `공주님과 왕자님의 결혼식'이었지요. 이런저런 억울한 의심을 받던 여우(女優)가 공주님으로 얼굴을 바꾸는데 수십년이 걸렸군요.
늘보 letitbi@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