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올림픽 마라톤에서 예기치못한 ‘돌발상황’을 맞아 부진했던 ‘봉달이’ 이봉주(30·삼성전자)가 3일 후쿠오카 마라톤에서 2시간 9분4초의 무난한 기록으로 2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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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후지타는 30km까지 이디오피아의 아베라와 나란히 선두를 달리다 36km지점에서 치고 나가기 시작해 단독 선두를 질주,2위를 달리던 아베라와의 거리를 조금씩 벌이며 독주해 2시간 6분 51초의 아시아 최고 기록으로 우승했다.
이봉주 선수는 30km지점까지 일본의 후지타 이디오피아 아베라 등 선두권과 500m 이상 뒤쳐져 5위를 달리다 40km지점을 2시간 2분 15초의 기록으로 통과하면서 한명 한명 따라 잡기 시작해 일본 선수 프랑스 선수에 이어 결승 스타디움에 들어와서 이디오피아의 아베라를 제치고 2위에 올라섰다.
이봉주 선수는 출발지점부터 선두권에서 역주를 거듭해 왔으나 25km지점 쯤에서서 일본 후지타의 흔들어 놓기에 휘말려 약간 뒤로 쳐졌다.
후지타는 40km를 2시간이 약간 넘는 기록으로 달렸다.
이봉주는 “후쿠오카에서 자신감을 찾은 만큼 내년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에서 금메달에 도전하겠다 ”고 다짐했다.
올림픽 레이스도중 넘어져 2시간17분57초로 24위에 그쳤던 이봉주는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다. 올림픽 금메달을 위해 흘렸던 땀방울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음은 물론이고 그에게 쏟아졌던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얼굴을 들지 못했다.
특히 ‘넘어지지도 않고 넘어졌다고 거짓말 하는 것 아니냐’ ‘이젠 끝났다’는 등 올림픽 부진을 계기로 자신에게 쏟아지는 온갖 비난에 속앓이도 많이 했다.
그래서 ‘이봉주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을 일소시키고 자신감을 되찾은 뒤 새로운 해를 맞이하기 위해 올림픽이 끝난지 단 2개월만에 과감하게 ‘후쿠오카 승부수’를 띄워 성공을 거둔 것이다.
물론 일부에서는 우려의 소리도 높았다. 2월 도쿄마라톤― 10월 올림픽―12월 후쿠오카대회 등 한해 3번씩이나 뛰는 것은 무리라는 것. 또 올림픽이 끝난지 60여일 밖에 되지 않는 상황에서 자칫하면 선수수명의 단축을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바로 그것이다. 게다가 이봉주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공식대회 23번 풀코스 완주자. 전문가들은 나이를 고려해 볼 때 1년에 한 두번쯤 뛰는 게 적당하다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이봉주의 생각은 단호했다.당초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그동안 사귀던 동갑나기 여자친구와 올해 말쯤 결혼하려던 계획도 내후년 봄으로 미뤘을 정도.
후쿠오카는 이봉주에게 뜻깊은 곳이다. 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뒤 후쿠오카에서 애틀랜타올림픽에서 3초차이로 우승을 내준 투과니에게 멋진 복수를 하며 우승,완전히 세계적인 마라토너로 우뚝 섰기때문.
참가선수들도 이봉주의 승부욕을 돋궜다. 시드니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게자헹에 아베라(2시간7분54초·에티오피아)를 비롯해 호나우두 다코스타(2시간6분05초·브라질), 게르트 타이스(2시간6분33초·남아공), 프레드 키프로프(2시간6분47초·케냐) 등 내로라 하는 세계 마라톤 스타들이 출전했다.
이봉주는 지난 12일부터 경남 고성에서 초겨울 찬바람속에 비지땀을 흘리며 마무리 훈련을 했다. 후쿠오카 코스가 비교적 평탄하기 때문에 스피드에서 승부가 판가름날 것으로 보고 스피드훈련에 전념했다.
오세린/동아닷컴기자 ohs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