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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 두 문화⑧]시드니, 말을 하고 싶다

입력 | 2000-08-20 18:47:00


김형찬〓디지털 생명인 시드니와 아날로그 강아지 인 제리는 감각기관이 다르기 때문에 가까워지기 가 쉽지 않지만 의사소통을 통해 그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고 했죠? 그렇다면 의사소통을 원 활하게 하기 위해 시드니가 말을 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요? 물론 제리는 말을 못하겠지만 시 드니는 초보적인 단계의 언어를 통해 제리에게 좀 더 많은 느낌과 생각을 표현할 수 있을 테니 까요. 또 시드니가 말을 할 수 있다면 사람들과 도 더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윤송이〓말을 할 수 있으면 서로를 이해하는 데 도 움이 되긴 할 거예요. 하지만 인위적으로 언어 기능을 부여하기보다는 우선 언어가 어떻게 형성 되는지부터 생각해 보죠.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구체적인 사건들이에요. 바위에서 땅으로 떨어졌 을 때나 나무에서 잔디로 떨어졌을 때, 그리고 담에서 콘크리트 바닥으로 떨어졌을 때의 느낌이 다 다르겠지만 이런 경험을 통해 ‘(높은 곳에서 아래로 떨어졌을 때의) 아픔’이라는 대표치의 개 념이 형성돼요. 디지털 생명에게 언어를 특별히 가르치지 않더라도 환경에 반응하면서 두뇌 안 에서 개념의 분류가 이뤄져요. 그렇게 해야 학습 과 기억, 그리고 의사전달에도 효율적이니까요.

김〓하지만 언어란 실제로 사실을 담아내기에는 대 단히 부족해요. 인간의 사고나 감성, 그리고 사 물과 현상 등이 인간의 언어보다 훨씬 다양하고 섬세하니까요. 노자가 “도를 도라고 말할 수 있 다면 그것은 진정한 도가 아니다(道可道, 非常 道)”고 한 것은 바로 그런 언어의 불완전성을 상 징적으로 나타낸 것이지요.

윤〓그래요. 언어가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 인간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더 복잡해요. 하지만 분명 히 필요한 언어의 기능이 있기 때문에 언어가 발 달하게 됐을 거예요. 의사소통과 전달의 효율성 을 고려한다면 다양성을 다 표현하기보다는 어떤 공통점을 찾아내 압축과 추상을 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지요.

김〓서양에서는 플라톤 이래로 개념화를 아주 긍정 적으로 보는 전통이 있어요. 현상계에는 다양한 사물과 현상이 있지만 그 사물과 현상의 가장 이 상적이고 완전한 이상적 본체는 이데아계에 있다 는 것인데 그 이데아계라는 것이 알고 보면 추상 화된 개념의 세계를 상징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현상계는 불완전하고 이데아계는 완전하다는 사 고방식은 곧 추상화된 개념의 사고를 적극적으로 긍정하는 셈이지요. 이에 반해 동양에서는 언어 를 사용하면서도 그 불완전성을 끊임없이 경계해 왔어요. 서양의 전통이라고 무조건 개념화된 언 어를 중시한 것은 아니지만, 동양철학의 전통에 서는 우주 자연의 끊임없는 생성 변화의 리듬을 그대로 느끼는 ‘체득’을 중시해요. 거친 언어의 개념으로 그 리듬의 흐름을 토막토막 분석해서 이해하는 것을 낮은 수준의 이해로 보는 것이지 요.

윤〓언어관의 차이가 철학의 차이도 가져왔겠군요. 언어는 단지 타인과의 외적인 의사소통뿐 아니라 혼자 생각하는 내적인 의사소통에도 필요하기 때 문이지요.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가, 그리고 그 언어를 얼마나 정확히 사용하는가에 따라 사고도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지요.

김〓그래서 서양철학에서는 분석 종합과 논리적 추 론이 발달한 반면 동양철학에서는 분석되지 않은 우주 자연 전체에 대한 체득과 깨달음을 중시하 게 됐어요. 그렇다면 왜 인간만 그렇게 복잡한 언어를 갖게 됐을까요? 어차피 모든 것을 다 표 현할 수도 없는 것이라면 최소한의 의사소통에 필요한 것 이상으로 복잡한 언어는 비효율적이지 않을까요? 세상에는 너무 많은 말들이 난무하고 있어요.

윤〓복잡하긴 해도 거친 개념보다는 섬세한 개념을 담을 수 있는 단어나 문장구조를 갖는 것이 좀더 정확한 관계설정과 의사소통을 위해 유리하기 때 문에 복잡한 언어가 발달하게 됐을 거예요. 일단 있으면 편하고 좋은 것이 발달하는 법이니까요. 일정한 조건하에서 태어나 그 조건하에서 살다가 죽는 ‘스페셜리스트’인 동물과 달리, ‘제너럴리 스트’인 인간은 다양한 조건에 적응하면서 살아 가지요. 새로운 조건에 대응하면서 살기 위해 많 은 것을 학습하고 전달할 필요가 있었을 거예요.

김〓시드니의 경우라면 어떨까요? 일단 말을 할 수 있는 성대가 갖추어진다면 어느 정도의 말을 익 힐 수 있을까요?

윤〓성대가 어느 정도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는가 에 따라 달라질 거예요. 사과와 복숭아를 그냥 ‘과일’이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표현하다가 둘을 구분하고 싶게 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만일 성대가 구분해 표현하지 못한다면 신체적인 표현 능력의 한계 때문에 그런 개념이 발생하지 못할 거예요. 생각으로는 백 가지를 구분할지라도 성 대는 두 가지밖에 표현 못한다면 생각도 제한을 받게 된다는 것이지요.

김〓심신이론(心身理論)에서 정신과 신체가 서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군요.

윤〓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서로의 발달을 제약 하면서 함께 발달하는 것과 같아요. 정신이 소프 트웨어라면 몸은 하드웨어인 셈이거든요.

hphong@donga.com

■외적 의사소통(external communication)과 내적 의사소통(internal communication)

외적 의사소통은 타자와의 관계에서 말 표정 몸짓 등을 통해 의사를 전달하고 이해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에 반해 내적 의사소통이란 혼자서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남과 의사소통할 때 뿐 아니라 혼자 느끼고 생각할 때도 어떤 개념 단어 문장구조를 사용하는가에 따라 제약을 받는다. 같은 언어를 사용할지라도 얼마나 많은 어휘를 알고 그 어휘들을 얼마나 정확히 사용하는가에 따라 사고과정에 영향을 받는다.

■스페셜리스트(specialist)와 제너럴리스트(generalist)

대부분의 동물은 일정한 환경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살다가 죽는다. 특수한 환경에만 적응하도록 결정돼 있다는 의미에서 이런 동물은 스페셜리스트인 데 반해 인간은 지구상 어디나 옮겨 다니며 다양한 환경에 적응해서 살 수 있다는 점에서 제너널리스트다. 따라서 인간은 다양한 환경에 대응하고 새로운 경험과 지식을 효율적으로 축적하고 전달하면서 살기 위해 언어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