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의원 집단폐업 이틀째인 21일 오후 정부와 의료계가 폐업 이후 처음으로 협상을 가졌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협상은 3시간 동안 진행됐으나 ‘탐색전’으로 끝났다. 정부는 “일단 의약분업을 시행하고 문제가 있으면 약사법 개정을 포함해 3개월 안에 보완하겠다”는 종전의 입장을 거듭 밝혔고 의료계는 “상황이 이 정도까지 됐으면 정부가 생각하는 카드를 꺼내 놓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맞섰다. 이 과정에서 의료계 협상팀이 테이블을 박차고 일어서는 등 진통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일단 협상 채널이 가동됐고 양측의 협상팀도 “대화의 문은 열어 두겠다”고 밝혀 협상이 어떻게든 전개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하지만 현재로선 낙관도 비관도 할 수 없는 상황. 정부와 의료계의 입장차가 워낙 큰 것은 물론 의료계 내부 사정도 복잡해 일이 여러 갈래도 꼬여 있기 때문이다.
의협 조상덕(曺相德)공보이사는 “열쇠는 정부가 쥐고 있다”고 말했다. 임의조제 근절을 위한 대통령의 약사법 개정 약속, 대체조제시 의사의 사전 동의, 의보수가 현실화 등을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반면 보건복지부는 18일 국무총리 주재 회의에서 내놓은 ‘선시행 후보완’ 입장을 거듭 강조했을 뿐 어떤 방안도 가져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부 한 관계자는 “일부러 안가져온 게 아니라 정부는 이미 카드를 다 보여 정말 내놓을 게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양측의 입장차 외에 의료계 내부가 강온 양론으로 엇갈려 의견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온건파는 시행 전 최대한 의료계의 주장을 반영하고 시행 뒤 약사법 개정 등 다른 요구사항을 관철시키자고 주장한다. 또 온건파는 국민 의료비의 확대, 의보수가 현실화, 전공의 급여 정부 지원 등 의료환경의 개선에 좀더 주안점을 두고 있다.
강경파는 의료환경의 개선은 물론 당초 내세운 약사들의 임의조제 근절을 위한 약사법 개정 등 요구사항이 먼저 관철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단 의약분업이 시행되면 약사법 개정 등은 약사들의 반대로 물 건너 갈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온건파의 목소리에 힘이 실려 협상이 타결돼도 강경파의 반발 등 진통이 계속될 가능성이 많다. 강경파가 세를 얻으면 협상 자체가 결렬될 개연성도 없지 않다.
여기에 응급실 중환자실 등을 담당하고 있는 종합병원의 전문의와 의대 교수 등이 예고한 대로 폐업에 동참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완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양측 모두 파국은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는 형성돼 있다.
의료계가 진짜로 우려하는 것은 협상이 전혀 진전되지 않거나 일부 진척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내분이 벌어지는 상황. 실제로 쏟아지는 국민의 비난 여론, 검찰의 집행부 구속 수사 및 업무개시 명령에 응하지 않는 병원에 대한 수사 방침 등이 계속 터져 나오면서 의료계 일각에서 벌써 흔들리고 있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미 부산 대구 등 지방 병의원 중 일부가 정상 진료에 복귀했다.
정부가 의료계의 요구를 받아들여 의약분업 시행을 연기할 것이라는 관측은 개연성이 없어 보인다. 정부는 “여기서 밀리면 다른 개혁도 끝장”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다 약사들의 반발 움직임도 심상치 않기 때문.
어떻게 결론이 나더라도 의료계의 상실감은 치유되지 못할 것이란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의약분업이 시행되더라도 의사들이 분업에 적극적이지 않을 경우 그 고통은 고스란히 애꿎은 국민이 떠안게 될 가능성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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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協 김방철이사▼
협상이 성사됐으나 합의된 내용은 하나도 없다. 상견례를 겸한 첫 모임이라는 정도의 의미를 두기로 했다. 정부쪽에서 의료계가 납득할 만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오히려 의료계쪽에 협상안을 가져오지 않았느냐고 물어와 실망이 컸다.
의료계가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 마련중인 의약분업 연구안을 협상안으로 오해하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 이것은 폐업투쟁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밝힐 내용으로 우리나라 보건의료 체계 전반을 고쳐나가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대화는 계속할 것이다. 대화 날짜는 서로 상의해 정하기로 했다. 정부 측에 차후 협상에서는 오늘의 협상 카운터파트보다 더 격상된 인사가 나오고 의료계가 주장한 임의조제 근절과 대체조제 금지 등 10가지 요구사항에 대한 해답을 가져오기 바란다는 뜻을 전달했다. 정부가 다음 회의에서는 진전된 개선안을 내놓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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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 이경호 실장▼
의료대란으로 국민이 겪는 고통을 빨리 없애기 위해 계속 협의하자는 데는 정부도 의료계도 이견이 없다. 하지만 의사들이 약사법 재개정 등 기존의 10가지 요구사항 외에 새로운 내용을 내놓지 않아 진전이 없었다.
의료계는 다음달 1일 의약분업 시행 전에 약사법을 재개정하라는 기존 요구를 그대로 되풀이했다.
정부는 의약분업 시행 전에 제도를 보완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며 일단 의약분업을 3개월간 시행한 뒤 문제점을 보완해서 필요하면 법률을 개정하고 그 외의 부분은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전했다.
이날 모임은 총괄 타결을 위한 구체안을 제시하기보다는 실무자들이 양측 입장을 서로 확인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본격적인 대화는 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의료계 입장이 정리되는 대로 22일에라도 다시 협의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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