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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훈의 세상스크린]'6년전 실수' 가슴아픈 기억

입력 | 2000-06-04 19:49:00


식당이나 카페에 들를 때면 종업원들은 저를 친절하게 대해주십니다. 제가 출연한 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싸인을 해달라고 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친구들이 어떤 식당이 불친절하다고 이야기해도, 저는 그 식당이 그다지 불친절하게 느껴지질 않습니다.

해외여행을 위해 비행기를 탈 때면 승무원들도 제게 참 잘해주시는 편입니다. 그래서 옆에 계신 다른 승객들에게 괜히 미안할 때도 있습니다. 이름 모를 관객에게서 호의의 편지를 받아보기도 하고, ‘중훈형’‘중훈오빠’사진을 책상 위에 붙여놓는다는 얼굴 모를 청소년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 자신의 직분에 맞게 열심히 사는데도 불구하고 유독 저는 저의 ‘일’인 연기를 조금 성실하게 했을 뿐인데도 방송이나 신문에선 수백만명 앞에서 저를 칭찬해주십니다. 저는 이렇게 이 사회에서 사랑을 많이 받고 사는, 복에 겨운 사람입니다.

▼법 어긴 경거망동 깊이 반성▼

그런데 개인적으론 기억하기도 지긋지긋한 악몽처럼 가슴 아픈 기억이지만, 저는 6년전 경거망동으로 법을 어겨 사회에 큰 물의를 빚은 경험이 있습니다.

그 이후 식당이나 카페는 저에게 더 이상 친절하지 않았습니다. 승무원들에게 욕을 먹을까봐 비행기도 타지 못했습니다. 얼굴 모를 청소년들은 “그럴 줄 몰랐다”고 울음으로 ‘항의’했고, 이름모를 관객들은 분노의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방송이나 신문은 수백만명 앞에서 저를 꾸짖었습니다. “박중훈씨 때문에 우리 물건이 많이 팔려 고마워”라고 말하던, 제가 광고모델로 소속되어있던 회사들은 제가 제품의 명예를 훼손시켰다며 일제히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걸어왔습니다. 저는 이 사회가 저에 대한 사랑을 그렇게 순식간에 걷어갈 줄은 몰랐습니다. 1년여간 세상이 두려워 동네 비디오 가게에도 갈 수가 없었습니다.

▼'광주술판' 비난도 기대 컸던 탓▼

그래도 제가 분에 넘치는 운이 있었는 지 관객들은 제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셨고, 저는 다시 영화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관용을 베풀어주신 세상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저는 그 이후 길거리에 껌 종이도 함부로 버릴 수가 없습니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할까요? 너무도 사랑하면 너무도 미워할 수 있다는 것. 너무도 기대하면 너무도 실망할 수 있다는 것을 조금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젊은 정치인에게 너무도 많은 사랑을 주었고, 권력을 감시해주는 시민단체에 너무도 많은 기대를 했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사랑과 기대를 받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실망도 이토록 가혹하리만큼 크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미움과 실망은 아직 사랑이 남아있다는 마지막 표현이 아닐까요? 그 다음은 무관심일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