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사 속의 대논쟁 10' 핼 헐먼 지음/가락기획 펴냄▼
"만약 당신이 원숭이의 후손이라면 그 조상은 할아버지 쪽인지 할머니 쪽인지 밝혀주시오.”
‘하느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이 동물로부터 기원했다는’ 진화론을 용납할 수 없었던 성공회 옥스퍼드 주교 새뮤얼 윌버포스의 발언이 끝나자 회의장은 폭소와 박수로 떠나갈듯했다. 무대는 1860년 여름 어느날 영국과학발전협회 연례회의가 열린 옥스퍼드대의 한 강당. 그러나 뒤이어 연단에 오른 지질학자이자 동물학자인 토머스 헨리 헉슬리는 윌버포스의 마지막 발언을 부메랑처럼 날려 버렸다.
“나는 원숭이의 후손이라고 해도 수치스럽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양과 웅변의 재능을 편견과 오류를 조장하기 위해 악용한 사람의 후손이라면 매우 수치스러워할 것입니다.”
장내는 “헉슬리!”, 아니 실제로는 “다윈!”을 연호하는 군중과 분노한 성직자들로 아수라장이 됐다.
과학이란 ‘실험실에서 말수가 적은 전문가들이 정확한 측정도구들을 사용해 발견해내는 진리’라고 정의하는 사람이라면 19세기의 이 소동이 과학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인류역사의 중요한 과학적 발견이나 새 이론은 때로 저잣거리의 주먹질 같은 격론을 통해 정립됐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과학사의 주요 논쟁 10가지를 연대기적으로 서술한 것이다.
진화론외에 △지동설을 두고 벌어진 교황 우르바누스 8세 VS 갈릴레이의 불공정한 논쟁 △원과 똑같은 면적의 정사각형 그리기로 다투었던 월리스 VS 홉스 △미적분학의 창시자 자리를 두고 평생을 다투었던 뉴턴 VS 라이프니츠 △생물의 자연발생설을 두고 대립했던 볼테르 VS 니덤 △지구의 나이에 관해 엄청난 오판을 했던 켈빈 VS 당대의 지질학자들 △공룡화석을 놓고 서로 도둑놈이라고 비난했던 코프 VS 마시 △대륙이동설을 외롭게 주장했던 베게너 △인류발생의 잃어버린 고리를 놓고 ‘동지’에서 ‘원수’가 된 리키가족 VS 조핸슨 등의 사례가 소개된다. 원제는 ‘Great Feuds in Science’. 과학저술가인 저자는 자료수집에 20년을 바쳤다.
10개의 과학논쟁이 드러내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과학적 진리가 객관적이고 검증가능한 증거에 의해서만 확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갈릴레이가 교황 앞에 ‘회개하겠다’고 항복문서를 썼던 것은 증거불충분 때문이 아니라 힘의 열세 때문이었다.
정치사회적 변수도 과학적 논증의 왜곡에 한몫했다. 17세기 영국 뉴턴과 경쟁했던 독일 라이프니츠의 업적에 대해서는 20세기 초반까지도 “라이프니츠와 독일의 영광을 위해 활동했던 내부변절자가 그에게 뉴턴의 연구를 몰래 빼돌린 것”이라는 음모론이 버젓이 과학잡지에 실렸다.
그러나 논쟁이 늘 비과학적인 소란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공룡화석이나 인류의 잃어버린 고리에 대한 논쟁들은 주요신문 1면 머릿기사로 다뤄지는 횟수만큼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고 그를 통해 재원을 마련해 연구기반이 확대되는 직접적인 효과도 있었다.
도 매스미디어의 지배를 받는 20세기 대중이 역사적 과학논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경계(警戒)는 미드와 프리먼의 사례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모아섬 청소년의 자유로운 성생활에 대한 현지조사결과를 통해 ‘문화는 양육과정을 통해 학습되는 것’이라는 이론을 정립했던 미드. 그는 1978년 사망 때까지 흔들림없이 명성을 누렸다. 바로 그 점이 프리먼의 공격을 받게 된 이유가 됐다.
‘거인을 죽이는 일’, 즉 선학(先學)의 명성을 딛고 스타가 되려는 계산 때문에 미드라는 거대한 우상을 공격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논쟁의 양자를 오가며 과학사의 주요 사건을 일별할 수 있는 것이 이 책의 장점.
보다 중요한 것은 한 시대의 권위에 의해 지지됐던 과학적 진리는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둔 채 탐구돼야 한다는 교훈일 것이다. 이충호 옮김. 343쪽 1만원.
ry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