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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라이프 마이스타일]김주용씨/김일의 후예로 살기

입력 | 2000-02-22 19:03:00


프로레슬러의 몸은 자동차 범퍼와 같아야 한다고 선배들은 말했다. 아무리 부딪혀도 아픔을 흡수할 줄 알아야 한다고. 적어도 레슬링에 있어서는 ‘맞는 게 남는 것’이라고 나는 배웠다.

어릴적부터 김일선수는 나의 미래이자 꿈이었다. 장대한 기골을 잽싸게 날려 적의 이마에 박치기를 내리꽂는 모습이란. 중학교를 마치고 레슬링을 시작한 나를 아버지는 “프로레슬링은 사양산업이 될 것”이라며 강하게 막았다. 집을 뛰쳐나온 나는 강원 태백의 탄광촌에서 1년 넘게 중국음식점 배달부로 일하며 상경자금과 김일체육관 등록비를 마련했다.

▼레슬러의 눈물▼

경기 도중 오른쪽 무릎이 탈골됐다. 깁스를 하고 김일선생을 만났다가 혼쭐이 났다. “레슬러에게 깁스란 없다!”

그 자리에서 깁스가 뜯겨 나갔다. 그 뒤 인대가 늘어나고, 어금니가 부러지고, 어깨뼈가 빠졌지만 진정한 레슬러인 나는 병원을 한번도 찾지 않았다.

레슬러가 눈물을 흘리는 것은 아파서가 아니라 수치스러워서다. 세 딸이 보고 있는 경기에서 혼절을 당하며 들것에 실려나올 정도로 패배하면 더욱 그렇다. 그 때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샤워하면서 울어버린다. 딸들은 “아빠도 반칙을 써보라”며 발을 동동 구르지만 아이들이 보는 경기일수록 반칙을 쓸 수는 없다.

▼정글의 법칙▼

프로레슬링은 대개 100㎏이 넘는 거구들이 겨룬다. 그래서 자칫 이성을 잃거나 흥분하면 상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게 된다.

치사한 반칙으로 상대에게 치명타를 가하면 다음 경기에서 누군가에 의해 반드시 유사한 복수를 당하는 게 링의 법칙이다. 거친 ‘정글’일수록 룰은 철저히 지켜져야 한다. 다음은 프로레슬러가 링에서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매너이자 ‘생존의 조건’.

①팔을 15도 이상 비틀지 않는다 ②허리를 안쪽으로 꺾을 때는 90도 이상 꺾지 않는다 ③ 손가락을 비틀 때는 2개 이상씩 잡아 부러짐을 막는다 ④얼굴을 주먹으로 때리지 않는다 ⑤발끝으로 걷어차지 않는다.

상대의 기술에 제대로 걸렸을 때는 버티면 안된다. 체면은 내동댕이치고 사정없이 “아프다!”고 소리질러야 한다. 그래야 관중도 즐겁지만 상대방도 더 강한 힘을 주지 않는다. 레슬링은 인생과 참 닮아있다. 버티기보다는 아프다고 소리질러야 더 당하지 않는다는 점이나, 지겠다는 판단이 서면 아무리 비장의 기술이라도 다음을 위해 숨겨둬야 한다는 것이나.

▼김주용→노지심▼

2년전 아내와 이혼했다. 문득 레슬러로서 나는 밋밋하게 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밀려왔다. 머리를 빡빡 깎고 수염을 길렀다. 효과적으로 나를 알리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게 프로의 세계다. ‘김주용’이라는 이름도 나약해 보였다. 수호지에 나오는 인물의 이름을 따 노지심이라고 닉네임을 정했다. 그 뒤 나는 ‘링 위의 헤드라이트’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머리를 밀고 나니 이제 박치기를 구사하면 인기를 끌지 않을까 궁금했다. 쇠로 만든 링 기둥이 떵떵 울리도록 수십번씩 머리로 받아가면서 충격이 어느 정도 가해져야 이마가 찢어지는지를 실험했다. 잠들기 전이면 나는 거울을 본다. 최대한 험악한 표정을 연습하는 것이다.

키 180㎝, 몸무게 108㎏, 거기에 험상궂은 인상. 일상생활에선 뜻밖의 결과를 낳기도 한다. 길거리에서 마주친 사람들이 십중팔구 나를 피해가기 일쑤다. 그래서 음식점이나 술집은 늘 정해진 곳만 간다. 또 엘리베이터에서 다른 사람과 단 둘이 있게 되는 사태를 피하기 위해(‘그’는 엄청난 심리적 공황을 느낄 것이다) 10층까지는 아예 계단으로 다닌다.

딸들은 “맞고 살지 말고 장사하면서 안전하게 살아보자”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프로레슬러가 아닌 내 인생을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링에서는 나이가 들수록 관중의 모습이 눈에 더 잘 들어오는 법. 관중에게 나를 어떻게 ‘팔아야’ 하는지, 로프를 딛고 올라서 관중에게 박수를 요구할 때는 어떤 표정이 적절한지를 40줄이 넘어선 지금에야 터득하는 것이다.

(김일선수의 고향인 전남 고흥군 금산면으로부터 배로 10분 거리의 섬 마도(馬島)에서 1958년 태어난 김주용씨는 서울 은평구 응암동에서 세 딸과 살고 있다. 1980년 프로레슬러로 데뷔한 이래 400여회 링에 올라 50% 남짓한 승률을 거두었다. 김씨는 최근 서울에서만 30만여명의 관객을 끌어모은 영화 ‘반칙왕’에서 주인공의 상대선수 역으로 잠깐 출연했다.)

sjda@donga.com

▼이런 반칙은 '애교' 이런 반칙은 '치사'▼

프로레슬러들 사이에 관용적으로 용납되는 반칙과 치사하고 혐오스럽게 여겨지는 반칙을 노지심선수가 증언했다.

같은 반칙을 5초 이상 계속할 경우 반칙패.

▼헤드록…코브라 트위스트…레슬링기술도 훌륭한 호신술▼

세계레슬링연맹(GWF) 챔피온 이왕표선수가 말하는 ‘호신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레슬링 기술’. 이씨는 기술에 걸렸을 때 뿌리치고 나오는 해법도 밝혔다. 이씨는 과거 ‘박치기’로 유명했던 김일씨(71)의 후계자.

①헤드 록(Head Lock)〓손목 안쪽 복숭아뼈 부위를 상대 볼의 움푹 팬 부분에 넣고 양손을 잡은 뒤 견고하게 당겨 조른다. 이 기술에 걸렸을 때는 볼에 닿아있는 상대의 손목 하나를 양손으로 잡고 떼어낸 뒤, 반대 방향으로 뒤틀면서 팔을 꺾으면 역공할 수 있다.

②코브라 트위스트(Cobra Twist)〓상대가 나를 껴안고 앞으로 넘기려 할 때 이를 역이용하는 기술. 상대의 가랑이 안에 왼발을 넣고 오른 팔꿈치로 엉덩이를 누른 후, 왼팔로 상대의 오른팔을 뒤로 비틀어 꺾는다. 이 기술에 걸리는 순간 왼발을 재빨리 빼낸 뒤 앞으로 업어쳐 넘기는 것이 해법.

③스콜피온(Scorpion)〓엎드려 있는 상대의 양다리를 겹치고 가랑이 사이로 한 발을 집어넣은 후, 상대의 발목 중 하나를 겨드랑이 사이에 넣은 채 체중을 실어 지긋이 깔고 앉는다. 이 기술은 좀체 빠져나오기 어렵다.

④사자(4字)꺾기〓상대의 가랑이 사이에 왼 다리를 넣고 상대의 오른발을 잡은 채 한바퀴 구르면 상대 오른발이 ‘ㄱ’자로 꺾인다. 이때 꺾인 다리를 상대의 쭉뻗은 다리의 무릎 위에 포개고, 내 오른 다리로 상대의 꺾인 다리 위를 지긋이 누르면 상대는 ‘4’자 모양으로 다리가 꼬여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이 기술에 걸릴 경우 순간적으로 상대의 오른 다리를 손으로 밀쳐 내고 왼편으로 재빨리 구르면 오히려 상대의 다리가 꼬이게 돼 역공이 가능.

※ 어린이는 절대로 따라하지 마세요.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