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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 신화」를 벗긴다]日 경제인 대담

입력 | 1999-08-26 19:55:00


한국계 일본인 손정의(孫正義·일본명 손 마사요시·42)소프트뱅크 사장. 그의 행보는 너무 빨라 따라잡기도 어렵다. 일본 도쿄(東京)증시 상장 7개월만에 주식시가 총액 일본20위권 기업에 진입했고 마이크로소프트(MS)와 도쿄전력을 파트너로 해 합작회사를 설립하는 방안을 발표했으며, 한국계 일본인으로는 최초로 일본산업경쟁력회의 위원에 선임됐다. 최근 두달동안 그가 쏟아낸 뉴스다. 그는 과연 디지털세계의 맹주인가. ‘손정의 신드롬’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 두 일본경제 관련인사가 25일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만났다. ‘손정의 21세기 경영전략’의 저자 이시카와 요시미와 ‘한국이 죽어도 일본을 못따라잡는 18가지 이유’를 펴낸 모모세 다다시 회장.

두사람의 첫마디는 “손정의씨가 한일양국에서 이해할 수 없으리만큼 낮게 평가되고 있다”는 안타까움이었다.

▽이시카와〓손사장이 이룬 성공은 일본인, 심지어 재일교포 사이에서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를 높게 평가하는 곳은 미국인 것 같습니다.

▽모모세〓제가 대단하게 여기는 건 손사장이 그런 평가에 초연하다는 점입니다. 한국계라서 일본사회가 인정을 안해 준다는 이유로 좌절하는 사람을 많이 봐 왔거든요.

▽이시카와〓그는 이제 일본정부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가 됐습니다. 최근 손사장이 총리자문기관인 일본 산업경쟁력회의 위원으로 위촉됐는데 총리는 공식적인 모임 외에도 수시로 전화를 걸어 “정보혁명시대를 디자인하는 일을 도와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말레이시아 마하티르총리 등 손사장과의 면담을 기다리는 각국 지도자들이 줄을 잇고 있지요.

컴퓨터황제하면 떠오르는 이름은 ‘빌 게이츠’다. 손정의와 소프트뱅크는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낯선 이름이다. “나의 목표는 세계1위”라는 그의 말은 믿을 만할까.

▽이시카와〓소프트뱅크는 분명히 세계 디지털 혁명을 주도하는 회사입니다. 가령 소프트뱅크가 월스트리트에서 발을 뺀다면 세계 주식시장이 흔들릴 겁니다. 소프트뱅크가 디지털 혁명을 선도하는 기업이라는 증거를 세가지만 들어보죠. 첫째, 소프트뱅크는 전세계 인터넷 관련 기업들의 주식 지분을 70%나 갖고 있습니다. 둘째, 현재 설립 추진중인 나스닥 저팬(일본판 장외 주식시장·미국나스닥 상장기업과 일본의 신흥기업 주식을 매매할 계획)을 통해 벤처기업 설립의 기반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셋째, 최근 소프트뱅크와 도쿄전력이 합작회사를 만들었는데 이 회사가 이룰 ‘통신비 인하’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것은 디지털 혁명을 앞당기는데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모모세〓통신비 절감만 해도 디지털 환경을 크게 변화시키는 일이지요. 통신비가 싸지는 만큼 정보가 일방통행 대신 쌍방향으로 흐르는 게 더 활발해질 테니까요.

▽이시카와〓나스닥 저팬의 설립도 전통적인 기업성장체제를 뿌리째 뒤흔드는 일입니다. 일본기업의 평균 수명은 30년인데 기업을 상장하기까지 평균 22년이나 걸려요. ‘창업 3년 내에 주식을 공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온 손사장의 나스닥 저팬 추진은 신생 기업이 투자자본을 보다 쉽게 확보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이시카와는 “손정의씨를 처음 만난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다른 벤처기업인들이 돈 더 벌 궁리에 열중할 때 손사장은 “앞으로 15년 후면 주머니에 들어가는 전화기가 나올 것”이라는 몽상가같은 이야기를 몇시간이고 계속했다고 한다.

▽이시카와〓당시 그가 하는 말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 빛나는 눈을 보며 이 사람은 꼭 뭔가를 이룰 거라는 믿음을 갖게 됐습니다. 그의 성공비결은 한마디로 정열입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누구든 만나줄 때까지 문앞에서 기다리고, 만나면 그 사람을 설득할 때까지 밀어붙입니다.

▽이시카와〓소프트뱅크는 어떤 기술을 개발해 상품을 만드는 회사는 아닙니다. 대신 어떤 기술이 몇년 후에 어떤 가치를 지닐 것인지를 가장 먼저 발견해 사업에 응용하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모모세〓손사장은 대학 때 자동번역기를 개발해 샤프사에 1억엔에 팔 만큼 자기 아이디어를 상품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자기만한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직접 제조자로 나서기보다는 아이디어를 상품화하는데 주력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시카와〓손사장은 곧잘 자신을 인프라를 만드는 사람, 도로나 무대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표현합니다. 나스닥을 통해 주식을 공개한다든가 합병회사를 만들어 통신비를 절감한다든가 하는 일들은 모두 정보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국적이 어디든, 개인이든, 단체든 무언가에 참가해 경제적 이윤을 추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의 인프라 구축이 성공한다면 그 영향은 한일 경제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세계 각국의 벤처기업가 모두에 새로운 기회를 줄 것입니다.

〈정은령·이명재 기자〉ryung@donga.com

■이시카와 요시미

52세. 게이오(慶應)대 법학부 졸업. 소설가 평론가 영화제작자로 활동했으며 현재 ㈜사회기반연구소 회장. ‘벤처기업인의 대부’로 불린다. 경단련 위원이며 총리 자문기구인 원자력위원회 위원. 97년 ‘손정의 21세기 경영전략’을 펴냈다. 한국어판(소담출판사)발간을 기념해 23일 내한.

■모모세 타다시

61세. 63년 일본의 대표적 종합상사인 도멘 입사. 68년부터 서울 근무, 현재 ㈜한국도멘 회장. 71년부터 12년간 포항제철에서 일한 공로로 81년 대한민국 산업훈장을 받았다. 한국의 경제문화에 대해 독설을 퍼부은 책‘한국이 죽어도 일본을 못 따라잡는 18가지 이유’(97년)를 펴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