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기(李宗基)변호사 수임비리사건, 정치검사의 퇴진을 요구하는 심재륜(沈在淪)전대구고검장의 성명발표와 ‘검찰파동’에 이어 중견 판사가 법원의 개혁을 요구해 법조계가 큰 충격에 휩싸였다.이제 ‘개혁의 발길’은 검찰에서 법원으로 옮겨지는 분위기다. 법조계 전체가 잘못을 고치지 않으면 국민 앞에 올바로 설 수 없다는 위기감에 몰리고 있다.
수원지법 문흥수(文興洙)부장판사가 ‘전관예우’의 폐해와 소신재판이 힘든 법원의 문제점을 통렬히 지적하자 판사들은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다. 법원의 법관 전용 통신망에 실린 문부장판사의 글에 대한 조회수가 1천1백여건에 이를 정도로 반응은 폭발적이다.
서울지법 A판사는 “판사들이 문부장판사 글의 전반적인 취지에 공감하고 있다”면서 “여론에 의해 법원이 비리집단으로 매도되는 것이 불쾌하기도 했지만 철저한 자기반성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적절한 글이었다”고 말했다.
B판사는 “의정부 이순호(李順浩)변호사 사건 이후 전관예우가 많이 사라졌지만 문부장판사의 지적대로 ‘팔이 안으로 굽는’ 현상은 아직 남아있다”며 “판사들은 누가 봐도 공감할 수 있는 판결을 하는 노력을 기울여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C판사는 “일반인은 변호사와 술을 먹는 등의 행위가 재판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고 있는 만큼 판사들도 이런 시민들의 생각을 수용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판사들은 대전 변호사 수임비리사건 등에 대해 대법원이 나서서 해명할 것은 해명하고 반성할 것은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텐데 뒷짐만 지고 있어 국민의 불신이 더 커졌다고 지적했다.판사들은 특히 경직된 인사제도가 판사들을 위축시킨다는 문부장판사의 비판을 수긍하는 분위기.
D판사는 “지법 부장판사에서 고법 부장판사로 승진할 때 대법원이 인사기준을 공개하지 않아 지법 부장판사들은 꼬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 몸을 사리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같은 분위기에서는 소신껏 판결을 내리기 힘들다”고 말했다. 판사들은 승진 인사의 개념을 없애고 단일호봉제를 도입해 지법과 고법부장을 번갈아 맡게 하는 등 인사제도를 대폭 개혁할 것을 주장했다.
하지만 고등법원 부장 등 일부 판사들은 “구체적인 대안도 없는 글을 발표해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라고 비판하기도 했다.또 판사들은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지낸 경력이 없으면서 대법관들이 상고이유서를 읽는지 안읽는지를 자의적으로 이야기하는 것도 온당한 처사가 아니고 사실과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서정보·하태원기자〉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