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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문정인/「529호실」정치쟁점화 중단을

입력 | 1999-01-11 19:28:00


국회 529호실 사태로 새해 정국은 점거 농성 법안처리강행등의 추태를 연출하면서 꽁꽁 얼어 붙고 있다. 이번 529호실 사태의 본질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자행되어 왔던 국가 정보기관의 정치화, 즉 정치사찰 여부에 있다.

한나라당측은 안기부가 529호실에 비밀 사무실을 차려놓고 직원들을 상주시켜 국회의원들의 동향 감시와 도청 및 감청 등 불법적인 정치사찰 활동을 벌여왔다고 주장하면서 이는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것으로 이를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불가피하게 물리적 방법으로 증거를 확보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안기부 활동의 범위 ▼

안기부의 과거 관행이나 타성으로 보아 한나라당이 이렇게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안기부가 과거 정치사찰과 정치공작을 해온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기존관행이 쉽게 바뀔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기부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합법적인 국가정보기관이다. 남북 군사대치 상황하에서 지금과 같은 안기부 업무를 둘러싼 시비는 더이상 일어나서는 안된다.

어쨌든 이번 사태는 국가정보기관에 대한 몇가지 중요한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다.

그 첫째는 정치사찰의 개념에 대한 모호성이다. 정치사찰이란 미행 도청 등 불법적인 방법으로 정치인의 약점을 캐내 이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것을 뜻한다. 때문에 정치사찰은 일반적으로 특정 정치인에 대한 조종 통제를 목적으로 하는 정치공작과 불가분의 연계고리로 연동되어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529호실에서 확보한 문건들만으로는 정치사찰과 공작의 증거를 찾아보기 어렵다. 단순한 정치정보 수집행위를 사찰과 공작 행위로 간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야당의원들 뿐만 아니라 실세 여당의원들에 대한 문건들이 발견되었다는 점이 이를 말해 주고 있다.

두번째는 안기부의 첩보수집 범주에 대한 논란이다. 안기부법 3조1항에 따르면 안기부의 수집업무는 해외정보, 그리고 대공 보안 방첩 등의 국내보안으로 한정되어 있다. 따라서 정치첩보수집은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유념해야 할 것은 한국의 안기부는 해외정보와 국내보안 정보를 동시에 다루는 통합형 정보 기관이란 사실이다. 통합형 정보기관에서는 두가지 이유 때문에 국내 정치첩보 수집이 정당화된다. 그 하나는 대통령이 국가안보를 포함한 국정을 원만히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대공및 방첩 활동의 효율화를 위한 것이다.

특히 대공 및 방첩 활동과 관련된 정치인 동향 첩보수집은 이미 미국 영국 독일 등 선진국에서도 보편화돼 있다. 왜냐하면 과거 냉전하 구소련국가보안위원회(KGB) 등 공산 진영의 정보 기관들이 서방측 주요 정치인들의 비리 성추문 등 약점을 이용하여 포섭 공작을 벌여온 바 있기 때문에 이를 차단하고 예방하기 위해 정치인 동향 파악에 역점을 두어 왔다. 이렇게 볼 때 법의 테두리내에서 정치 행위를 위축시키지 않는 한 국내 정치정보 수집은 허용될 수 있다고 본다.

세번째는 529호실에서 발견 된 문건들의 성격에 관한 것이다. 야당측이 정치사찰의 증거로 제시하고 있는 문건들은 아직 정제되지 않은 일선 수집관의 첩보에 지나지 않는다. 첩보와 정보는 구분되어야 한다. 특히 안기부의 속성상 일선 수집관들은 저인망식 첩보 수집을 한다. 이러한 첩보들은 분석 부서에 의해 정선되어 정보화될 때 비로소 정책적 가치를 가지게 된다. 과거 북풍 사건에서처럼 이러한 초보적 첩보를 가지고 정치 쟁점화하는 것은 중대한 구체성의 오류라 할 수 있다.

▼여야 대화로 풀어야 ▼

마지막으로 여야를 막론하고 국가정보기관의 정치화를 삼가야 할 것이다. 아무리 정치가 실종되었다고 하더라도 법으로 비밀이 보장된 국가정보기관을 정국돌파용 단서로 삼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엄밀히 말해 이번 사태는 고질적인 정치불신문화와 여야의 정치력 부재에서 야기된 바 대화를 통하여 실정법의 테두리 안에서 풀어나갔어야 할 사안이라 생각된다.

차제에 안기부에 대한 불신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법적 제도적 개선과 보완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안기부가 국내정치의 소모적 정쟁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 없고 궁극적으로는 국가안보의 기반이 크게 저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