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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며 생각하며]이관우/초대형 우량은행을 위하여

입력 | 1998-08-06 19:49:00


“잘 살아보세”라는 한마디가 절실하게 피부에 와닿던 시절, 은행에 몸을 담았다. 이제 일선에서 물러나며 지난 시절을 돌아보니 40년 세월이 생생하게 떠오르며 감회에 젖게 된다.

그 시절 우리에게 세계경제대국이라는 것은 어쩌면 환상이었고 우리가 바란 것은 단지 배고프지 않고 사람답게 사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절의 우리에겐 꿈이 있었다. ‘우리의 다음 세대는 자신들이 바라는 것을 세계 무대에서 당당히 성취할 수 있는 여건을 우리 손으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항상 ‘나’보다 ‘우리’가 먼저였고 ‘우리 회사’가 먼저였고 ‘나라와 민족’은 그 모든 것에 우선하는 가치였다. 이러한 희생과 노력이 한국을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이같은 좋은 가치를 잃어버린 것 같다. 더이상 가난이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고 느끼게 되면서 우리는 ‘나라와 민족’보다는 ‘우리 회사’를, ‘우리’보다는 ‘나’를 먼저 생각하게 된 것이다. 나아가 ‘나’의 잘못을 정당화하기 위해 타인을 비방하고 질시하는 이기적 생각들이 보편화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든다. 이 모든 것이 너무도 힘들었던 우리의 젊은 시절에 대한 보상심리라는 논리가 공허하게만 들리는 것은 왜일까.

지금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단어 중의 하나가 구조조정일 것이다. 그 구조조정의 중심에 은행권이 있음은 언론보도의 빈도와 비중에서도 알 수 있으며 구조조정의 한 축에 은행간 합병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이미 발표된 바와 같이 7월31일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온 국민앞에 국내 최초로 자발적인 합병을 선언했다. 이번 합병은 혼사에 비유할 수 있다. 성장배경은 물론 현재 처지가 다른 양가가 논의 과정에서의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양보와 타협의 정신으로 혼약을 성사시킨 것이다.

그러나 어려움은 지금부터라 할 수 있다. 그동안의 기업이나 금융기관간 합병을 보면 외형상 물리적 합병은 이루었으나 이질적인 기업문화에 의해 진정한 의미의 화학적 합병을 이루지 못한 사례가 많다. 미국이나 일본의 예를 보더라도 우리와는 달리 주주권이 명확히 형성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도권 싸움을 벌이다 어렵게 이뤄놓은 합병을 공염불로 만드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은 많은 모임에 참가하는 것을 큰 자랑거리로 여긴다. 학원에서 한달을 수강하면 수강자들의 계모임이 하나 생긴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이러한 분파주의 성향은 합병의 전도를 어둡게 만드는 복병이다.

합병과정에서 분파주의와 소아적 이해관계를 탈피하지 못한다면 불필요한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게 되고 일사불란한 조직력을 갖출 수 없게 된다. 특히 이번 두 은행간 합병에는 정부지원이 불가피하게 뒤따르게 되고 이제 사(私)기업이 아닌 국민의 은행이 되는 것이다. 온 국민의 시선과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두 은행 그리고 소속직원들은 대승적인 자세로 스스로를 녹여 국민의 혈세가 헛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빠른 시일내에 합병후 은행이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추고 안정적 자금 지원이 이루어져 한국 금융산업을 선도하면서 우리 경제의 활력을 회복시키는 촉매제가 되기를 기원한다.

이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