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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인텔 배렛사장]『한발 앞서 과감히 투자하라』

입력 | 1997-12-31 18:33:00


[대담=이인길 정보과학부장] 《정보통신이 세계적인 성장 기류를 타기 시작했다. 미국과 일본 유럽은 물론 후발공업국에서도 정보화가 21세기의 ‘화두’로 등장한 가운데 국민경제의 생산과 수출, 고용을 주도하는 신산업 분야로 각광을 받고 있다. 기술변화가 갈수록 빨라지는 세계 정보통신 분야 리더들의 비전과 조언은 그 점에서 우리에겐 좋은 자극제가 된다. 동아일보는 새해를 맞아 세계 정보통신 업계의 정상급 인사들과 인터넷 인터뷰를 통해 21세기 비전과 정보화에 대한 전망을 들어보았다.》 한국 미국 일본이 분점하고 있는 세계 반도체시장은 메모리의 가격침체로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98년에는 격렬한 파워게임이 예고되고 있다. 비메모리 반도체로 세계 반도체 업계 1위의 입지를 굳힌 미국 인텔사의 경영철학과 시장전략은 한국경제와 메모리에 편중된 한국기업에 큰 시사점이 된다. 크레이그 배렛인텔사장은 인터넷으로 이루어진 인터뷰를 통해 “한국의 어려운 경제상황이 21세기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지만 정보통신 분야의 경쟁력 강화로 이를 충분히 극복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배렛사장은 특히 “현재 상황이 고통스럽더라도 정보통신 투자는 장기적으로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낼 것이며 새 대통령과 업계의 리더들이 정보화에 앞장서야 경제위기가 풀린다”고 강조했다. ▼ 정보 인프라 구축 힘써야 ▼ ―인텔도 80년대 한때 후지쓰 NEC 히타치 등 일본 기업들과의 시장경쟁에서 뒤져 어려운 처지에 빠졌는데 어떻게 극복했나. “혁신적인 구조조정으로 어려움을 극복했다.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몇몇 사업분야에 집중 투자하고 경쟁력이 없는 쪽은 과감히 포기했다. D램 반도체의 경우 당시 인텔의 시장점유율은 2∼3%에 지나지 않았다. 생산성도 낮았고 경쟁력도 없었다.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되는 제품은 생산을 전면 중단하고 마이크로프로세서 등 상대적으로 우월한 분야의 투자를 두 배로 늘렸다.” ―경제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정보화 투자에 대한 우선순위를 높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보화는 빠른 경제성장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정보화 사회에서 중요시되는 덕목은 정보 이외에 기술과 빠른 판단력이다. 자연자원과 노동력으로 국가의 위상을 가늠하던 시대는 갔다. 정보화, 판단력, 기술력, 이 세가지에 중점을 두는 사회로 이동하기 위해 정보 인프라 구축에 가장 힘써야 한다. 미국의 경우 국민소득의 3∼4%가 정보 인프라 구축에 투자된다. 정보화사회로 원만히 이동하려면 최소한 국민소득의 1∼2%는 투자할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 ―정보통신이 미국경제의 성장을 선도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는가. “미국에서는 지난 4년간 전체 경제성장의 45%를 정보통신 분야가 담당했다. 하이테크가 주도하는 이런 경제성장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본다. 21세기에는 전자상거래가 보편화될 것이다. 이미 매년 1백억달러 규모의 교역이 인터넷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4년 이내에 이 액수는 30배이상 늘어날 것이다. 광고시장에서 인터넷이 차지하는 비율도 크게 높아질 것으로 본다. 인쇄매체나 방송매체의 광고효과는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반면 인터넷의 광고효과가 높아질 것이 분명하다.” ―인터넷의 발전이 어디까지 갈 것으로 보는가. “현재 인터넷 인구는 1억5천만명이고 매년 1천5백만명의 새로운 사용자가 생겨나고 있다. 이 증가율은 당분간 수그러지지 않을 것이다. 1인 1PC시대를 기반으로 인터넷은 계속 발전할 것으로 본다. 인터넷은 정보의 창고역할뿐만 아니라 의사소통 정보교환 전자상거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다. 매년 인터넷을 통한 교역량은 30∼40%씩 증가할 것이다.” ▼ 전자상거래 표준 만들어 ▼ ―21세기를 대비해 인텔은 어떤 분야에 주력하고 있나. “네트워크분야와 전자상거래 디지털 화상처리에 중점을 두고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중 디지털 화상처리는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이를 네트워크로 서로 공유하는 사업이 될 것이다. PC 외에 워크스테이션을 서버로 사용하는 고객들에게 더 많은 비중을 둘 생각이다. IBM HP 선마이크로시스템 디지털 등이 개발한 서버에 잘 적용될 수 있는 CPU를 설계, 질 높은 사용환경을 만들겠다. 서버들이 서로 생김새는 틀리지만 기본 원리는 같다는 점에서 인텔이 기여할 부분은 매우 크다.”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인텔의 종업원은 6만명, 컴퓨터는 7만5천대를 쓴다. 가장 중점을 두는 분야는 정보 인프라의 구축이다. 현재 종업원 2천명이 하루에 주고 받는 전자우편은 2백만통이나 된다. 이는 단순한 메시지를 전하는 편지가 아니다. 전자우편의 내용은 글뿐만 아니라 오디오 비디오 컴퓨터프로그램 등 각종 멀티미디어 정보로 이뤄져 있다. 우리는 이것을 「리치E메일」이라 부르는데 이것 덕분에 인텔 직원들은 가장 빠르게 정보통신업계의 소식과 기술정보를 수시로 접하고 있다. 다른 업체들과 전자상거래 표준을 만들기 위한 노력도 하고 있다. 표준은 비단 인텔의 제품 판매를 위한 것이 아니다. 소프트웨어 업체인 SAP와 구축하고 있는 중소기업용 전자상거래 표준이 좋은 예인데, 인텔의 바람은 동종 업계에서 정보에 대한 접근과 교환이 언제 어디서나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는 곧 국가경쟁력의 향상을 뜻한다.” ▼ PC 보급률 매년 18% 증가 ▼ ―정보통신 분야의 최고 경영자가 가져야 할 덕목에는 어떤 게 있다고 생각하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흐름을 읽는 눈’이고 그 다음은 과감성이다. 이 둘을 가지고 있어야 업계 동향을 남보다 한 발 앞서 파악하고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다. 어떤 경영자들은 제품의 형체도 가늠하지 못한 상황에서 돈을 투자해 생산계획까지 세운다. 평범한 사람들 눈에는 무모해 보이는 이런 행동은 확고한 믿음에서 비롯된다. 이 믿음은 엄청난 양의 지식 없이는 결코 생겨나지 않는다. 특히 변화가 빠른 정보통신 업계의 리더는 경제 법률 기술 역사 등 사업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갖춰야만 한다. 가령 PC 보급률은 매년 18%씩 증가해왔다. 능력있는 리더라면 이 흐름에서 앞으로의 경향을 감지하고 어떤 기능의 부품을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낼지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구보다 먼저 제품을 만들어 시대의 흐름을 주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보통신은 시대의 흐름을 추종하는 분야가 아닌 흐름을 만들어내는 산업이라는 점을 명심하라.” ―성공한 정보통신 업체들은 대부분 조그만 벤처기업에서 시작했다. 벤처기업의 성공 요건은 무엇인가. “경제적인 환경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과 지식이다. 처절한 경쟁을 통해 질긴 생명력을 갖는 벤처기업만이 살아남는 비정한 사회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벤처기업의 특징 중 하나가 빠른 적응력이다. 따라서 벤처이면서도 적응력이 없으면 금방 도태되고 만다. 대기업이 된 후에도 마찬가지다. 인텔도 스스로를 ‘날쌘 코끼리’라고 부른다. 크기에 비해 의사결정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는 의미다. 이것은 앞서 말했듯이 회사 내의 정보흐름을 원활히 하고 리더의 빠른 판단력과 시대 흐름을 읽는 눈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야만 가능하다. 철강 조선 보험 등에서도 기술발전의 속도는 대단히 빠르다. 정보통신 분야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도 정보인프라 구축이 필수적이다. 인텔의 경우 최근 1년 동안 올린 수입의 45%가 96년 12월 당시에는 존재하지도 않았고 생산계획도 잡혀있지 않았던 제품에서 들어왔다. 빠른 적응력과 의사결정 속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사회환경도 중요하다. 아이디어를 밖으로 끌어내는 환경이 돼야 한다. 인맥보다는 지식과 아이디어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이를 위해 리더와 회사 간부들은 구성원의 능력과 지식을 발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그는 “직위에 얽매이는 회사는 이미 경쟁력을 잃었다고 봐도 좋다. 말단에서 최고 경영자까지 직급과 상관 없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품고 있는 사람이 어디엔가 있다. 지식의 깊이는 직급과 상관이 없다. 이처럼 곳곳에 흩어져 있는 보물을 찾아낼 줄 모르는 리더는 정보사회를 이끌 자격이 없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도 유연해야 한다. 연공서열에 얽매이고 직급 자존심이나 인맥에 얽매이는 사회는 앞으로 글로벌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고 말한다. ▼ 메모리 장기적 투자 필요 ▼ ―삼성전자 현대전자같은 한국 반도체업체들이 최근 가격하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아직 한국 업체들은 메모리 분야에 대한 의존성이 큰 것 같다. 그러나 메모리분야는 현재 값이 떨어지고 있지만 시장성이 매우 높다. 한국 기업들이 당장 큰 부담을 느끼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이 분야를 붙잡고 있으면서 새로운 사업분야를 개척해야 한다.” ―한국이 정보화사회로 나아가는데 조언을 한다면…. “한국은 PC를 받아들이는 데 매우 적극적이다. 최근의 경제불황이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소임에는 틀림없으나 국가 경제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라도 정보통신 분야의 경쟁력을 계속 끌어올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정부와 업계가 자신감을 잃지 말아야 한다. 장기적으로 정보통신분야는 더 많은 일자리를 제공할 것이다. 경제사정이 아무리 좋지 않아도 정보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꾸준히 늘려야 한다. 정보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기 위한 분위기 조성도 중요하다. 정부와 기업은 스스로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대통령이나 업계의 리더가 PC조차 사용할 줄 모르면서 정보화를 강조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정보화가 왜 중요한지 스스로 느끼고 실천해야 한다. 새 대통령은 이 점을 명심하고 지금의 상황을 헤쳐나갈 경쟁력을 키우는 데 모든 노력과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가정에 비유한다면 고통스럽지만 그동안 집안 구석구석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가계부도 새로 써야 하는 것이다. 빠르게 변하는 정보화 물결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배렛사장은 “4,5세된 내 손자들은 컴퓨터를 사용하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며 “한국의 새 대통령이 이들 만큼 컴퓨터와 친근하다면 한국 정보통신업계의 미래는 논의할 필요조차 없이 밝다”고 말했다. 〈정리〓나성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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