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가 1일 보도한 대통령선거에 관한 정치학자 설문조사는 현재까지의 대선과정을 평가하고 한국의 정치발전을 위한 지침을 제시하며 대통령후보가 갖추어야 할 덕목과 능력을 알아보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실시했다. 이 설문조사에서 2백명의 정치학자들은 그들의 정치적 지지성향 출신지역 연령에 크게 좌우되지 않고 학문적 양식에 입각한 답변을 해 주었다. ▼ 책임정치 실종 경계 ▼ 정치학자들은 이번 대선과정의 문제점으로 정책대결부재 지역감정 흑색선전을 지적했다. 정치학자들은 이 세가지 문제를 정치인들이나 일반 국민보다 훨씬 심각하게 보고 있다. 선거결과가 정책대결이 아니라 지역감정이나 흑색선전으로 판가름난다면 그 선거는 선거 본래의 의의를 잃기 때문이다. 금권과 관권개입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는 별로 심각하지 않다고 답변하였으나 이 문제에 관해서 우리들은 선거 마지막날까지 경계를 게을리해서는 아니될 것이다. 금품살포와 관권개입은 대개 선거 막판에 나타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 과정이 구미의 선진외국과 다른 또 하나의 특색은 대통령의 집권당 탈당이다. 여야당이 공정선거관리를 위해 대통령의 집권당 탈당을 권고했지만 정치학자들 중 10%만이 이에 동의하고 나머지 90%는 대통령의 집권당 탈당을 매우 잘못된 일이라고 보고 있다. 대통령이 앞으로도 계속 임기말에 집권당을 탈당한다면 한국정치에서 책임정치는 사라질 것이고 이러한 정치에서는 오늘날과 같은 실정(失政)만 재생산될 것이다. 후보들의 TV 의존도에 대해서는 58.5%가 긍정적 평가를 하였으나 41.5%는 너무 심하다는 평가를 하였다. TV는 영상 미디어이기 때문에 정치를 복잡한 정책대결보다는 이미지 대결로, 또 후보의 실상보다는 허상대결로 전락시키고 정치를 연예화할 위험성이 있다. 신문이 TV의 이와 같은 문제점을 보완해야만 할 것이다. 정치학자들 거의 모두가 한국의 정치발전을 위해서는 일인지배구조를 타파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일인지배구조를 타파하는 방법은 의원내각제를 통하는 길과 대통령제를 개혁하여 미국과 같이 삼권분립체제를 확립하는 길의 두가지 방법이 있는데 정치학자들은 전자보다는 후자의 길을 택하고 있다. 최근 정치인들의 무원칙한 이합집산은 정치학자들의 내각제에 대한 부정적 평가의 근거가 되고 있다. 정치학자들 중 80.3%, 73.2%, 60.3%가 각각 수평적 정권교체, 3김 청산, 세대교체가 한국의 정치발전에 아주 혹은 약간 중요하다고 응답하였다. 정치학자들은 정치발전을 위해서는 이 세가지 목표가 모두 중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는 것이다. 21세기 한국정치는 수평적 정권교체의 전통도 수립해야 하고, 구(舊)정치의 여러가지 악습도 타파해야 하고, 새로운 정치인도 필요한 것이다. 정치학자들 중 80.3%와 56.8%가 각각 금융실명제와 역사바로세우기 정책의 지속이 한국의 정치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답하였다. 정치학자들은 김영삼(金泳三)대통령에 대한 매우 부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이 두가지 정책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 설문결과 경청해야 ▼ 그들은 이 두가지 정책의 실질적 중단을 지지하고 있는 여야의 대통령 후보들과는 다른 견해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금융실명제의 지속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대통령 후보들은 정치학자들의 이와같은 견해를 경청해야 할 것이다. 이번 조사에서 대통령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과 능력은 비전제시 도덕성 경륜 추진력 포용력의 순으로 나왔다. 이 다섯가지 덕목 중 한두가지 덕목에 대해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은 후보는 있으나 이 다섯가지 덕목 모두에 일관되게 높은 평가를 받은 후보는 없다. 정치학자들은 세후보 모두가 간과하기 어려운 약점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정치학자들이 이번 대선에서 국민들에게 인물과 정책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여 투표하도록 권고하고 있는 것은 한국 정당들의 이념적, 정책적 무원칙성과 파당성 때문이다. 이정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