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 〈27〉 물론 그때 그 일로 해서 나는 대신을 찾아가 진심으로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리고 겉으로는 대신도 나를 용서해주는 척했습니다. 또 아버님은 아버님대로 대신을 찾아가 아들의 부주의로 엄청난 피해를 준 것을 대신에게 사과하는 한편, 나에게는 꼬박 한달 동안을 궁중의 다락방에 감금하는 벌을 내리기도 하셨습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때 대신이 품은 원한은 깊은 것이었습니다. 이런 오랜 원한을 품고 있었던 터라, 내가 뒷결박을 진 채 끌려나오자 대신은 당장 내 목을 치라고 명령했습니다. 『대체 무슨 죄로 나를 사형에 처하겠다는 것인가?』 나는 대신을 향하여 따졌습니다. 그러자 대신은 눈알을 잃어버린 자신의 왼쪽 눈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너는 내 왼쪽 눈알을 앗아간 놈, 그보다 더 큰 죄가 또 있을까?』 『오, 그건 실수였지, 악의를 품고 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그때 일로 해서 나는 진심으로 사과했고, 너는 나를 용서해주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새삼 그것을 문제삼다니, 그것은 신의 있는 사람이 할 도리가 아니지 않은가?』 내가 이렇게 항의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네놈은 실수로 그렇게 했을지 모르지만, 나는 일부러 보복을 하겠다. 그리고 네놈은 내가 용서했다고 하지만, 나는 한번도 네놈을 용서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밝혀둔다』 이렇게 말한 대신은 타오르는 복수심을 견딜 수 없는 듯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나에게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는 나의 왼쪽 눈에 손가락을 박아 눈알을 후벼팠습니다. 참으로 잔인하기 짝이 없는 놈이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나는 여러분들이 보시는 바와 같이 애꾸눈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눈알이 뽑혀버린 나는 고통을 참지 못하여 온몸에 피범벅을 한 채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러한 나를 대신은 커다란 궤짝에 넣으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리고는 희광이에게 분부했습니다. 『이놈을 너에게 맡길테니, 교외의 들로 데리고 가 목을 친 다음 시체는 새나 짐승들의 밥이 되게 하라』 대신의 명령을 받은 희광이는 궤짝을 메고 궁전을 나섰습니다. 사막 한가운데에 이르자 그는 궤짝에서 나를 끌어내었습니다. 온통 피범벅이 된 나는 비통한 심정을 가눌 길 없어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오, 이 무슨 기구한 운명인가? 사랑하는 사촌을 잃은 슬픔을 견딜 수 없어 고국으로 돌아왔건만, 고국에서는 또한 아버님을 잃고 눈을 잃은 채 이제 목숨마저 잃게 되었구나』 내가 이렇게 한탄하며 울고 있을 때 희광이가 말했습니다. 『오, 가엾은 왕자님, 비록 세상이 뒤집어졌다고는 하지만 제 어찌 왕자님의 목을 칠 수가 있겠습니까? 자, 어서 일어나 달아나십시오. 그리고 이 땅에 다시는 돌아오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왕자님도 저도 목숨을 잃을 것입니다』 그제서야 나는 고개를 들어 희광이를 쳐다보았는데 그는 뜻밖에도 아버님의 심복으로서 나의 은혜도 많이 입은 자였습니다. 나는 그 뜻밖의 은인의 손에다 입맞추며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