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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에세이/21세기 앞에서]남다른 기술로 승부

입력 | 1997-07-17 20:48:00


요즈음 우리는 기술의 위력을 실감하곤 한다. 인간이 만든 컴퓨터가 체스게임에서 인간을 이기는가 하면 통신망의 발달로 집에 가만히 앉아서 회사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아마도 우리가 과거에 꿈꾸었던 대부분의 것들이 이미 상용화됐거나 개발중에 있을 것이다. 이렇듯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기 때문에 우리는 기술이라면 시대를 앞서가는 최첨단 기술만을 생각하게 된다. ▼ 연필깎는 것도 기술 ▼ 그러나 기업경영에 있어서 첨단기술(Hi―technology)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세계 일등 기업이 반드시 세계최고의 기술을 가진 것은 아니다. 기술경영이 최근 기업들 사이에 많이 회자(膾炙)되고 있지만 기술경영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기술이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 봐야 한다. 나는 기술경영의 요체를 끊임없는 첨단기술에의 도전과 남과 다른 차별성을 확보하는 두가지 축으로 생각한다. 요즈음 연필을 손으로 깎는 어린이가 드물다고 한다. 모두가 연필깎이 기계를 사용하는데 혼자만이 손으로 능숙하게 깎는다면 이것도 훌륭한 기술이다. 세계 최고의 호텔이 되기 위해서는 첨단 전산시스템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전산시스템이 훌륭해도 프런트의 직원이 고객의 이름 철자 하나만 잘못 입력하면 그 고객에 대한 정보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하지만 내가 아는 어떤 호텔은 도어맨부터 시작하여 모든 직원들이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신호로 고객이 단골인지 아닌지, 고객의 취향이 어떤지를 주고받는다. 한참 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도요타 자동차의 「간판 방식」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간판(看板)이라는 조그만 카드를 가지고 부품과 재고의 흐름을 조절하는 것이다. 서구 기업들이 막대한 돈을 들여서 정보시스템을 구축할 때 일본기업들은 간단한 카드로 정보를 교환함으로써 경쟁우위를 가졌던 것이다. 나는 기업경영에서 생산 연구개발뿐 아니라 판매 경리 노무관리 등 투입물을 산출물로 바꾸는 모든 경영활동이 기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박사급 고급인력들이 장기간 연구해서 개발한 첨단기술뿐만 아니라 앞에서 예로 든 호텔직원과 도요타 자동차 직원들의 차별된 숙련기능(Hi―technique)도 훌륭한 기술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 기발한 발상 필요하다 ▼ 손자병법에서도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전략이라고 했다. 기초연구가 부족하고 자금여력도 충분치 않은 우리 기업들이 세계일류기업들과 첨단기술 경쟁에서 승리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우리 기업들이 나름대로 차별화된 기술을 가질 수 있다면 세계시장에서 우리 몫은 제대로 차지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언젠가 젊은이들에게 큰 인기가 있다는 「맥가이버」라는 TV 프로그램을 잠시 본 적이 있다. 주인공이 아무런 첨단장비 없이도 훌륭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누구도 미처 생각지 못했던 기발한 발상(Hi―thinking)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기술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건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