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개혁위원회가 진통 끝에 중앙은행제도와 금융감독체계 개편에 관한 안을 내놓았다. 시대적 요청인 중앙은행의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 금융통화운영위원회를 금융통화위원회로 개편하고 한 금융기관이 여러 가지 금융서비스를 동시에 제공하는 겸업주의 금융의 추세에 맞추어 은행 증권회사 보험회사에 대해 따로따로 행사하던 금융감독을 종합적으로 하자는 것이 골자다. 금개위 위원들의 노고를 치하한다. ▼ 원칙보다 타협의 산물 ▼ 정부는 곧 이 안을 법안으로 만들어 6월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키려고 벼르고 있다 한다. 그러나 이 과정을 보면서 불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어떤 개혁이든 정확한 현실인식과 확고한 원칙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원칙보다는 타협의 산물로 만들어진 금융개혁안은 위기에 처한 정권의 정치적 돌파구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또다른 금융왜곡을 가져올 위험도 있다. 현재 구상하고 있는 정도의 대폭적인 중앙은행제도 개편이나 금융감독체계의 변화는 나라의 앞날을 크게 좌우할 중차대한 일이다. 따라서 이런 저런 요구를 적당히 반영하여 만들어진 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날치기는 더욱 더 안된다. 한은법 개정논의는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활발한 논쟁이 있어 왔으나 대부분은 아직도 「한은이 독립해야 한다」는 상식적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금개위안만 해도 서두름의 흔적이 한두군데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우선 중앙은행의 목표를 당초 지불제도의 안정과 물가안정으로 결정했다가 이를 다시 슬그머니 물가안정으로 못박는 무원칙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중앙은행의 목표는 뉴질랜드처럼 구체적으로 인플레이션율로 삼는 데도 있고 독일처럼 포괄적인 의미에서의 통화가치 안정으로 정한 데도 있지만 미국처럼 물가안정 성장 고용 등에 주의를 기울일 수도 있다. 중앙은행의 미시적 거시적 기능을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아직 개발도상에 있는 국가가 중앙은행의 목표를 좁게 한정하여 그들의 손발을 불필요하게 묶어놓을 필요는 없다. 중앙은행은 특정한 세부목표를 대중에게 약속하기보다는 신용사회를 적절히 관리하여 경제의 안정을 꾀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중앙은행업무는 하나의 예술(Art)이 아닌가. 또 금통위의 위상이 불분명하다. 금통위는 중앙은행정책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이므로 한은(집행부)의 위에 있거나 적어도 동일한 위상을 가져야 한다. ▼ 金通委위상 모호해져 ▼ 그리고 은행감독원 보험감독원 증권감독원을 금융감독원으로 만드는 것도 위험한 발상이다. 그것은 인가 규제 검사 제재 등 4대 감독기능과 금융관련입법기능까지 보유한 거대한 금융공룡이 될 소지가 많다. 그 보다는 금융감독위원회가 좀더 느슨한 조정기구로서 종래의 세 감독원의 기능을 조정하는 역할만 해야 한다. 한은이 어떤 감독권을 가질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도 중앙은행의 기본임무로부터 자연스럽게 도출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대통령은 임기중에 개혁을 또 한 건 올리려는 욕심으로 금융개혁을 추진해서는 안된다. 한은총재 경제부총리 청와대경제수석도 마찬가지다. 금융은 금지옥엽처럼 다루어야 한다. 금융은 경제의 어떤 부문보다도 튼튼한 기초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을 서두르기보다는 이번 입법의 파급효과를 세심히 따져보고 그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아직 충분한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구체적인 입법은 다음 정권으로 넘기는게 낫다. 졸속 금융실명제의 재판이 안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다. 정운찬(서울대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