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한보의혹에 대한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했지만 그동안 제기됐던 의혹중의 일부만을 밝혀내는데 그쳐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한보철강사태는 정치권과 결탁된 금융비리와 정부의 정책실패 등이 얽혀서 빚어낸 복합적인 의혹사건인 셈이다. 따라서 검찰의 수사는 정부 정치권 은행 기업을 대상으로 종합적이고 입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했지만 각 부분의 수뢰관련자 혐의만 들춰냈을 뿐이다. 의혹과 함께 제기된 관련 정부부처의 책임문제는 사실상 묻혀버렸다. 5조원대의 국가기간산업이 부실덩어리가 됐는데도 왜 이렇게 됐고 누구에게 정책적인 책임이 있는지는 여전히 완성되지 않은 그림으로 남아있다. 검찰수사 종결에도 불구하고 풀리지 않은 의혹들을 사업 초기단계에서부터 부도직전까지 항목별로 점검해본다.》 ▼ 철강사업진출 어떻게 이뤄졌나 ▼ 한보그룹이 지난 90년부터 5조원규모인 당진제철소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정부차원의 견제를 받은 일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당시 건설부는 부지매립허가를 불과 9개월만에 내줬고 통상산업부는 신공법인 코렉스공법의 채택을 적극 권유했는가 하면 재정경제원은 5조원대의 자금지원을 방관했다. 한보는 지난 84년 금호그룹 계열사인 금호철강(현 한보철강)을 인수하면서 철강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한보철강의 규모는 연산 60만t규모. 이후 한보는 86년에 생산능력을 1백만t으로 늘렸고 87년엔 연산 9백만t규모의 당진제철소 프로젝트를 수립했다. 당시 철강업계는 한보의 경영능력으로 보아 당진프로젝트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당진프로젝트는 정부의 방관속에 계획대로 착착 진행됐고 필요한 행정절차도 순조롭게 풀려나갔다. 한보철강 고위관계자는 『정부가 현대그룹의 제철소사업 진입을 막고 철강수급을 맞추기위해 한보그룹을 제철사업에 유도했다』고 증언했다. 정부의 진입자유화 주장은 대형사업 추진과정 곳곳에서 허구임이 드러나고 있어 한보의 제철산업 진출 「허용」과정도 의혹으로 남는다. ▼ 코렉스공법 채택경위는 ▼ 한보철강은 지난 95년2월 코렉스설비 기술도입신고서를 통상산업부에 제출, 신기술로 확인받은 뒤 관세 및 소득세의 감면혜택을 받았다. 통산부는 코렉스공법을 첨단신기술로 확인해준 것은 이미 이 공법이 고도기술(신기술)로 지정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지난91년 재무부가 코렉스공법을 고도기술로 지정해 놓았기 때문에 통산부는 이를 확인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통산부는 한보철강의 1조원규모 코렉스설비도입에 대해 담당과장을 제외하곤 아무도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보철강이 상업성이 입증되지 않은 코렉스공법을 채택한 것은 전적으로 한보의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게 통산부의 주장. 이에 대해 한보철강 고위관계자는 『코렉스공법을 도입하게된 것은 정부의 적극적 권유때문이었다』며 『더구나 코렉스공법이 신기술로 지정돼있어 이를 마다할 이유도 없었다』고 말했다. 93년에 코렉스공법을 도입한 포항제철은 『포철은 신기술개발차원에서 실험용으로 코렉스공법을 도입했다』며 『한보가 상업적생산에 들어갈 목적으로 코렉스공법에 투자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 투자비용 어떻게 늘어났는가 ▼ 당진제철소 투자비는 당초계획으로는 2조2천8백억원이었으나 공사가 진행되면서 불과 2년동안에 5조7천억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한보철강은 94년말 산업은행주도로 외화대출 11억2천9백만달러의 지원이 결정되자 이듬해부터 당진제철소 투자규모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려나갔다. 당진제철소 투자규모는 95년4월에 당초계획보다 1조4천3백억원이 늘어난 3조7천억원으로, 96년3월과 12월에 각각 1조원씩 늘어나 총 5조7천억원으로 불어났다. 한보측은 신기술인 코렉스공법의 추가도입, 도로 및 항만건설 등 투자비가 2배이상 늘어났다고 해명했다. 정부나 채권은행단은 한보측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 늘어나는 투자비를 계속 지원했다. 특히 제일은행 등 채권은행단은 한보대출의 부실화를 우려하는 지적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오히려 자금지원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려나갔다. 투자비가 불어나 은행의 자금지원에 매달리던 기간(94∼96년)에 한보그룹은 유원건설 대성목재 상아제약 등 무려 18개의 회사를 인수하거나 설립했다. 이같은 사업확대와 대출증대를 정부가 몰랐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 사업타당성 조사는 어떻게… ▼ 은행들이 한보철강에 거액을 물리게 된 것은 신중한 사업타당성 검토없이 외압에 따라 대출을 결정한 것이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는 게 금융계의 설명이다. 제일 조흥 외환 등 시중은행들은 산업은행의 사업타당성 검토보고서를 토대로 한보철강에 대출하기 시작했다고 밝혀 자체 사업타당성검토는 아예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시인했다. 이들 은행이 대출근거로 삼았다는 산업은행 사업타당성보고서는 문제점 투성이다. 6조원이 넘게 투입되어야 할 공사에 2조7천억원만 투입하면 공사를 마무리할 수 있다고 한 한보철강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한 것은 사업타당성조사가 얼마나 형식에 치우쳤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은행에서는 특정사업에 대출을 하기에 앞서 사업시행자가 자금조달 능력이 있는지 여부를 따지는 재력검토를 최우선적으로 하고 이를 토대로 대출을 시작한다. 제일은행의 경우 전문신용평가기관에 용역을 맡겨 한보철강의 자금조달계획이 전혀 실효성이 없다는 보고서를 받고도 1조원이 넘는 돈을 쏟아부어 부실을 자초했다. 이 과정에서 국가기반산업인 제철산업의 사업타당성에 관해 정부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는 정부 설명도 납득할 수 없는 대목이다. ▼ 거액 부실대출 정부는 뭘했나 ▼ 한보사태에서 은행감독원 등 금융감독기관이 금융기관의 부실화를 묵인 또는 방조했다는 책임론이 제기된다. 금융계는 금융감독기관이 제역할을 다했다면 한보부도로 인한 은행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부은행의 여신이 지나치게 편중된 것은 일차적으로 해당은행의 책임이지만 정부의 잘못이 이에 못지않게 크다는 것이다. 제일은행의 경우 한보철강에 대한 은행계정의 동일인여신한도를 넘어서자 여신한도규제가 없는 신탁계정에서 자금을 지원하는 편법을 동원했지만 감독당국은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았다. 특히 은감원은 지난 1월 제일은행이 동일인여신한도를 초과할 수 있도록 한차례 승인을 해주기도 했다. 또 은감원은 한보상호신용금고가 한보그룹계열사에 동일인여신한도를 초과해 불법대출을 해준 사실을 적발하고도 가벼운 문책만하고 넘어가 감사원으로부터 지적을 받았다. 은감원이 제일 산업 조흥 외환 서울 등 5개은행에 대해 특별검사를 벌이는 것도 지금까지 감독을 소홀히 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동안 정기검사를 철저히 했다면 뒤늦게 특검을 벌일 이유가 없다는 것이 금융계의 반응이다. ▼ 구속된 은행장외에는 책임없나 ▼ 검찰은 거액부실채권이 나간 경위에 대해 95년 이후 鄭泰守(정태수)한보그룹총회장으로부터 요청을 받은 洪仁吉(홍인길)의원 등의 대출청탁에도 원인이 일부 있다고 밝혔다. 홍의원이 은행에 청탁한 시기는 지난 95년1월부터 작년말까지. 그러나 그동안 한보철강과 거래가 거의 없거나 미미했던 제일 조흥 외환 등 3개 은행이 지난 94년 거의 동시에 한보철강에 대출을 하게된 경위에 대해서는 해명이 없다. 금융당국자는 『정부차원에서 국가기간산업에 대한 대형프로젝트가 결정되면 장기저리자금을 대주는 산업은행이 주도하고 그 뒤를 시중은행, 그리고 제2금융권의 지원이 따르는 것이 관례며 한보철강도 그런 케이스에 속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한보철강의 프로젝트를 종합적으로 파악할 위치에 있었던 李炯九(이형구)전산은총재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대출외압 실체가 제대로 파악됐는지에 의문이 제기된다.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 申光湜(신광식)행장과 조흥은행 禹찬목행장만 구속된데 대해 금융계는 납득하지 않는다. ▼ 대출금 제대로 썼나 ▼ 검찰은 한보철강이 금융기관 대출금중 유용한 자금을 2천1백36억원이라고 밝혔다. 한보철강의 작년말현재 총차입금은 4조9천4백29억원. 이중 은행(2조4천87억원)과 제2금융권(1조8천4백84억원)의 대출금은 4조2천5백71억원. (은행감독원자료) 이 차입금중 유용된 자금규모가 2천억원대에 불과하다는데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다. 우선 당진제철소 건설의 대차대조표 자체가 의문투성이다. 한보측이 처음부터 마스터플랜을 갖고 추진한 것이 아니라 추진과정에서 사업계획이 여러번 바뀌었기때문에 사업계획 자체가 신빙성이 낮다. 비자금조성 여부를 떠나 경영및 공장건설이라는 경제적 측면에서만 본다면 한보철강 아산만공장을 제대로 설계하고 건설했더라면 3조원상당이면 됐을 것이라고 말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은행감독원 관계자는 『자금난에 몰려 하루하루 어음막기에 힘겨워했던 작년에는 한보철강이 돈을 대규모로 빼돌렸을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한보철강의 대출금유용여부는 은행대출금이 집중됐던 지난 94,95년도의 한보철강 자금지출내용을 정확히 살펴봐야 진상이 밝혀질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