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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억울한 죽음부른 「살인누명」

입력 | 1997-02-05 20:13:00


[수원〓박종희기자] 5일정오경 경기 수원시 수원의료원 영안실. 영정도 유족도 없이 안치된 金煥(김환·34)씨 시신 주변에서 수사관계자들이 부검준비를 위해 바삐 움직였다. 김씨는 4일 오후1시반경 수원 팔달산 서편 서포루안에서 2홉들이 소주 2병에 신경안정제를 타 먹고 한많은 이승과 작별했다. 정장차림에 넥타이까지 단정히 맨 김씨는 아무런 소지품없이 A4용지 7장에 「김환의 남기는 글」만을 지니고 있었다. 이 글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77년8월 15세때 밥을 훔쳐 먹으려고 가정집에 침입했다가 강도살인범으로 몰렸다. 김씨는 서울 강서경찰서로 연행돼 「3명의 건장한 형사들이 수건을 얼굴에 덮은 뒤 고춧가루물을 붓고 럭비공처럼 이곳 저곳으로 던지는」 고문에 못이겨 강도살인사건인 「개봉동사건」의 범인임을 허위자백했다. 김천 소년교도소 등에서는 마음이 편해 4개의 자격증을 따내고 틈틈이 일본어 한문 등을 배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억울한 마음을 참을 수 없어 교도관을 인질로 삼고 결백을 주장했다가 2년형을 더 받아 지난 94년5월에야 대전교도소에서 가석방됐다. 출감후 수소문끝에 찾은 아버지는 이미 새가정을 꾸려 김씨를 외면했고 명절 때는 혼자라는 외로움에 몸을 떨었다. 「복수심에 진짜 살인을 저질러볼까도 생각했지만 부질없는 짓. 실적을 올리기 위해서 못배우고 어리숙한 사람에게 죄를 만들어 인생을 망치게 한 K, E형사에게 앞으로 절대로 나같이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도록 부탁한다」. 김씨는 유서 말미에 施人愼勿念 受施愼勿忘(시인신물념 수시신물망·남에게 베푼 것은 절대로 마음에 두지말고 남에게 받은 것은 절대로 잊지 말라)이라고 적었다. 영안실에서 김씨의 유서를 꼼꼼히 읽던 한 경찰관은 『김씨가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 대한 공소시효가 끝나고 증거도 없어 진실은 묻힐지 몰라도 「양심상의 공소시효」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