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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日 위안부위로금 마찰]멀어지는 국가「배상」

입력 | 1997-01-12 19:53:00


「李洛淵기자」 일본의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국민기금」(이하 「기금」·이사장 하라 분베에·原文兵衛전참의원의장)이 국내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7명에게 5백만엔(3천6백50만원 가량)씩을 오는 20일까지 지급키로 본인들과 11일 합의, 韓日(한일)간의 외교갈등을 낳았다. 정부는 기금측이 「정부와 대다수 피해자들의 요구를 외면」(외무부 대변인 성명)하고 이를 강행했다며 유감을 표시, 오는 25,26일의 한일정상회담에서 이를 거론할 것임을 시사했다. 외무부는 유엔 인권위원회가 지난해 4월에 채택한 결의를 이행하고 피해자와 피해자단체가 총의로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방안을 강구하라고 일본정부에 촉구해왔다. 유엔 인권위 결의는 위안부문제에 대한 법적책임을 인정, 피해자들에게 보상하고 공개서면으로 사죄하라고 일본정부에 권고했다. 또 「정신대대책협의회」(정대협) 등 국내 유관단체들은 △진상규명 △국가책임인정 △국가배상을 일본정부에 요구해왔다. 그러나 기금측의 방식은 이런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를 회피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게 외무부와 유관단체들의 반대이유다. 이 문제에 대한 일본정부의 태도는 애매하다. 위안부모집 등에 대한 군(軍)의 관여와 강제성을 인정한 것은 92년 이후다. 그 이전에는 이를 줄곧 부인해왔다. 최근에야 위안부문제를 교과서에 넣었으나 일본우파의 반발은 여전하다. 이번의 5백만엔 가운데 위로금(기금측은 「보상금」으로 지칭) 2백만엔은 민간모금액, 의료복지사업지원비 3백만엔은 정부예산에서 나온다.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郎)총리가 「일본국 내각 총리대신」이란 공식직함으로 사죄편지를 보내 「국가로서 도의적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일본정부는 법적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정부가 앞장서지 않고 기금을 통해 접근한다. 여기에는 「청구권포기」의 해석여지를 남긴 채 지난 65년에 체결된 한일기본조약의 문제도 관련이 있다. 정부는 93년6월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생활안정지원법」을 제정, 처음으로 피해자지원에 나섰다. 「일본에 물질적 보상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의 선언에 따른 것이었다. 이 법에 따라 국가가 월25만원(올해부터 100%인상)씩을, 지방자치단체도 얼마간의 금액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들에게 이 돈은 충분하지 않다. 5백만엔을 받기로 한 가네다 기미코(77·위안부 때의 이름·한국이름은 선친과 형제들의 명예를 위해 비공개)할머니는 월36만원(국가 25만, 구청 8만, 동사무소 3만원)을 받는다. 가네다 할머니는 『이 돈으로는 아파트임차료와 전기 수도 전화요금 내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게다가 정부는 성의있게 이 문제에 임하지도 않는다. 예컨대 외무부의 이번 발표도 사실과 다르다. 11일 오후 외무부는 기금측이 △피해자 5명에게 △2백만엔을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발표했으나 모두 잘못이었다. 「7명에게 5백만엔씩을 지급키로 했다」는 게 현재의 정확한 상황이다. 정대협 등은 지난해 10월 「일본군 위안부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한 시민연대」를 결성, 피해자 지원을 위한 모금활동 등을 시작했다. 그러나 모금실적이 미미한 실정이다. 일부 피해자들이 5백만엔씩을 받기로 한데는 정부와 사회의 태도도 작용했다. 가네다 할머니는 『명절에도,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정부나 단체의 그 누구한테 전화 한통 없었다』며 『그러나 기금측 사람들은 한달에도 몇번씩 찾아온다. 그 수고가 미안해서라도 (5백만엔을)받기로 했다』고 말했다. 가네다 할머니는 4년전부터 밥을 못먹는다. 이(齒)도 없고 소화기능도 약해졌기 때문이다. 여기저기가 아파 진통제 없이는 아침에 일어나지도 못한다. 9평짜리 임대아파트 위층의 가내공장 소음 때문에 밤잠도 잘 못잔다. 그래서 5백만엔을 받으면 단독주택을 전세얻고 틀니도 해넣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나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고 할머니는 한숨짓는다. 한일외교마찰로 종군위안부문제는 또다른 어려운 국면을 맞았다. 이는 한일양국정부가 훨씬 진지하게 이 문제에 다시 임해야 할 때가 됐음을 의미한다. 국내의 생존 피해자는 1백60명이다. 이들은 계속 죽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