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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동하는 대권산실/김종필 정치행보]「발빠른 처신」명수

입력 | 1996-12-15 20:14:00


「宋寅壽기자」 내년 대선정국을 내다보기 위해서는 80년 정변(政變)상황에서 된서리를 맞은 뒤 87년 정치를 재개한 JP(金鍾泌·김종필)가 지난 10여년동안 보여준 행보를 한번쯤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지난 8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5공 권부(權府)는 여성(與性)표가 분산된다는 판단아래 JP의 대선출마를 막으려 했다. 그러나 JP는 이를 물리치고 신민주공화당을 창당, 출마를 강행했고 대선막바지에서는 야권후보단일화를 주장하기도 했다. 이같은 JP의 주장은 金泳三(김영삼) 金大中(김대중)진영의 소극적 태도 때문에 무위로 돌아갔지만 한가지 눈여겨 볼 대목은 자력(自力)으로는 아무 승산이 없음을 알고 「현실적 선택」을 염두에 두었다는 사실이다. 대선후 비록 제4당 규모지만 여소야대 상황에서 정치적 캐스팅보트를 쥔 JP는 곧바로 정당연합 합당 등 또다시 자구책(自救策)을 찾기 시작했다. 그 결과 90년 3당합당에 동참했고 盧泰愚(노태우)대통령 김영삼당대표에 이은 「제3인자」로서 자세를 낮추고 순응(順應) 자족(自足)하는 특유의 스타일을 보였다. 당시 JP의 행보중 흥미로운 대목은 92년 대선후보경선 때의 처신이었다. 그는 당내경선의 막이 오르자 당사에 발을 끊고 신당동 자택에서 이른바 「칩거정치」를 하면서 「세대교체」에 뜻을 둔 듯한 자세를 보여 YS 진영의 애를 태웠다. 그러나 결국 그는 YS의 손을 들어주고 당대표직을 맡았으나 기대했던 「차기」가 보장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탈당」이라는 또 한차례의 현실적 선택을 했다. JP는 정치권에서는 보기 드물게 「특유의 굴신력(屈身力)으로 무리하지 않는 정치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셈이다. 이제 다시 야권후보 단일화를 외치는 JP가 결국 어떤 계산아래 어떤 현실적 선택을 할 것인지가 대선정국의 판도를 가름하는 변수가 될 것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