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바지로 치닫는 윤석열 전 대통령 공판에서 연일 이례적인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 피고인인 윤 전 대통령이 증인들을 직접 신문하면서 12·3 비상계엄 관련 질문들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피고인도 증인을 신문할 수 있지만, 자주 연출되는 장면은 아니다. 본인에게 불리한 증언이 나올 수 있어 하더라도 최소한으로 하는 게 보통이다.
윤 전 대통령은 증인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검사 질문이 부적절하다고 생각되면 “재판장님, 제가 한마디 해도 되겠습니까”라며 수차례 마이크를 잡는다. 검사 시절 특별수사로 이름을 떨쳤고, 검찰총장과 대통령까지 지내는 등 최고의 ‘전관(前官)’이라 할 수 있는 본인이 직접 증인들을 압박해 재판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법원이 영상으로 공개하는 윤 전 대통령의 신문 모습은 흡사 특수부 검사가 서울중앙지검 조사실에 불려나온 피의자를 상대로 조서를 받아낼 때와 비슷하다. 카메라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 듯 특유의 고압적인 자세와 어투, 몸짓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증인들을 압박한다. 그중에서도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을 상대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언급하면서 “사령관이라는 놈이 수사의 시옷(ㅅ) 자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나”라고 묻는 장면이 압권이었다. 자신에게 충성을 다하다가 수감 중인 3성 장군을 ‘놈’으로 지칭하며 정치인 체포조 혐의를 떠넘기려는 듯한 질문에 홍 전 차장은 “피고인, 부하한테 책임 전가하는 것 아니죠?”라고 되물었다.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도 윤 전 대통령의 압박이 계속되자 괴로운 듯 “지금까지 차마 제가 말씀 안 드렸다”면서 “한동훈하고 일부 정치인을 호명하시면서 당신 앞에 잡아 오라고 그랬다. 당신이 총으로 쏴서라도 죽이겠다고 했다”고 반박했다.
곽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시를 따랐다가 재판을 받고 있고, 홍 전 차장은 정치인 체포 의혹을 폭로했다가 경질당했다. 계엄에 깊숙이 가담한 혐의를 받는 여 전 사령관도 유죄가 선고되면 중형이 불가피하다. 한 법조인은 “전직 대통령이 자신 때문에 고초를 겪고 있는 부하들에게 2차 가해를 하고 있는 것”이라며 혀를 찼다.
‘2차 가해’ 비판은 국민의힘도 자유롭지 않다. 장동혁 지도부는 비상계엄 1년을 수일 앞둔 상황에서도 사과 메시지와 수위를 고민 중이다. 11월 28일 대구 집회에서 장 대표는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계엄을 통해 민주당의 무도함이 드러났고, 대한민국의 현실을 볼 수 있었다”는 단서를 달았다. 다음 날 대전 집회에서도 “하나가 되어야만 싸울 수 있다”며 투쟁에 방점을 찍었다. 반면 “사과하자”는 제안은 거센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대전 집회에서 양향자 최고위원이 “반성해야 한다”고 외치자 당원들은 고성을 지르고 커피를 집어던졌다. 현장엔 ‘계엄 사과 절대 안 돼’ ‘계엄은 정당했다’ 등의 현수막과 팻말이 등장했다.
증인들에 대한 윤 전 대통령의 2차 가해는 중단돼야 한다. 필요하다면 재판부가 윤 전 대통령의 신문 태도를 바로잡거나 제지해야 한다. 국민의힘도 지금의 어정쩡한 태도가 계엄 피해자인 국민들에 대한 2차 가해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사과 메시지와 수위를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제1야당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어떠한 이유와 단서도 달지 않고 진심 어린 사과를 해도 시원찮다는 점을, 국민의힘은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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