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대미 투자액이 3500억 달러(약 495조 원)라는 점을 재차 강조하면서 “그것은 선불(It‘s up front)”이라고 말했다. 양국이 7월 합의한 투자액을 미국이 만드는 펀드에 한꺼번에 ‘현금’ 형태로 먼저 집어넣으라는 요구다. 한미 관세협상 후속 논의가 타협점을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다. 한국이 외환보유액의 84%에 해당하는 금액을 단기간에 미국에 투자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어서 협상이 길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 “일본에서는 5500억 달러, 한국에서는 3500억 달러를 받는다”면서 이 투자액은 ‘선불’ 형태라고 했다. 특정 프로젝트와 투자액을 트럼프 정부가 지정하면, 45일 안에 현금을 송금하는 양해각서(MOU)에 서명한 일본과 비슷한 조건에 한국도 빨리 동의하라는 압박인 셈이다. 같은 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이 한국에 투자규모 증액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정부는 미국 측 요구조건이 7월 말 양국이 협상에 합의한 당시와 달라져 곤혹스럽다는 입장이다. 한국 협상단이 작성한 비망록에는 투자펀드 대부분을 대출과 보증으로 충당하고, 일부만 직접투자로 한다고 기록돼 있는데, 미국 측이 이후 보내온 MOU 초안에는 직접투자를 훨씬 강조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는 것이다. 최근 우리 정부가 미국에 ‘무제한 통화 스와프’를 대미 투자의 선결조건으로 요구한 것도 직접투자 형태로 막대한 달러가 단기간에 미국으로 유출될 경우 외화 유동성 부족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한다.
트럼프 정부는 다른 나라에 일방적으로 고율 관세를 부과한 뒤 인하를 조건으로 무리한 요구를 관철하고, 필요하면 언제든 말을 바꾸는 행태를 계속하고 있다. 경제규모, 외환보유액이 현저히 큰 일본에 맞먹는 투자를 한국에 요구하는 것부터 과도하다. 여기에 한해 예산의 70%가 넘는 돈을 현금으로 먼저 내놓으라고 압박하고, 추가 증액까지 거론하고 있다. 동맹국간 협상에서 이러처럼 ‘골대’를 수시로 옮기면서 자국 이익만 챙기려는 미국에 따질 건 제대로 따져가며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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