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 시간) “미국에 들어오는 모든 반도체(semiconductors)와 집적회로(chips)에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정확한 부과 시점은 안 밝혔지만 자동차(15%)와 철강·알루미늄(50%)보다 훨씬 높은 100% 관세를 거론하며 반도체를 관세 전쟁의 한복판에 두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한국의 대(對)미국 수출 품목 2위인 반도체가 관세 폭탄의 사정권에 들면서 관세 전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또 한국 산업계에 미칠 파장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대미 반도체 수출액은 107억 달러(약 14조 8730억 원)로 전체 대미 수출액의 8.3%, 전체 대미 무역흑자의 14%를 차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 백악관에서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를 만난 자리에서 “반도체에 매우 높은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면서도 “미국에 공장을 짓고 있거나 짓기로 확실히 약속했다면 관세는 없다”고 말했다. 또 미국 내 공장 건립을 약속했지만 실제로 건설하지 않는 경우에는 “다시 계산해서 나중에 그 누적분을 청구하겠다”고 경고했다. 관세 미부과에 따른 각종 이익 등을 계산해 페널티를 물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5일 CNBC 인터뷰에서 다음 주쯤 품목별 관세를 발표할 예정이라며 그 대상으로 반도체와 의약품을 거론했다. 빠르면 다음 주에 반도체 관세율 발표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일본 대만 등 주요 반도체 생산국과 그 기업들에 미국 내 투자를 압박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애플도 향후 4년간 6000억 달러(약 834조 원)를 미국에 투자하겠다고 밝표했다.
일각에선 한국이 지난달 미국과의 통상 협상에서 우리 반도체 분야에 ‘최혜국 대우’를 적용하기로 합의한 만큼, 상대적으로 타격이 적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만약 미국이 유럽연합(EU)에 가장 낮은 15%의 관세율을 반도체에 부과하면, 한국도 100%가 아닌 15%를 적용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7일 한국이 최혜국 약속을 받았다고 밝혔다.
다만 세부 내용이 공개되지 않은 만큼, 불확실성이 크다는 주장도 나온다. 워싱턴 외교 소식통은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반도체를 품목별 관세의 대표 타깃으로 본다”며 “어떤 식으로 적용될지는 예상하기 어렵고, 아직 안심할 단계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신진우 niceshin@donga.com